항목 ID | GC06900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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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相夔旌閭門 |
영어공식명칭 | Lee Sanggi's Memorial Arch |
이칭/별칭 | 이상기 효자문,이상기 정려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방문식 |
현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양희다리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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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정려문 |
양식 | 솟을대문의 홍살에 정려기를 건 형태 |
소유자 | 이상기의 13세손 이석우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상기의 정려문.
[개설]
이상기(李相夔) 정려문(旌閭門)에는 이상기의 정려기(旌閭記)가 게시되어 있다. 정려기의 내용에 따르면 이상기[1631~1686]는 부친에 대한 효행으로 1683년(숙종 9)에 효자 정려문이 내려지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효행의 내용은 19세기 후반 고종 연간에 편찬된 『안산군읍지』 충효열조(忠孝烈條)에 나타나 있다. 이상기는 부친이 병이 나자 변을 맛보고 하늘에 기도하는 등 부친이 사망하는 날까지 효를 다했다. 정려기의 내용상 효행을 기리고자 한 것이므로 효자문(孝子門)이라고도 한다.
[위치]
이상기 정려문은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 있던 것을 택지 개발로 인해 2009년 시흥역사자료전시관으로 이전하였다.
[형태]
정려문은 보통 솟을대문의 홍살에 정려기를 건 형태이다. 이상기 정려문은 철제 대문 위에 가로가 긴 직사각형 현판으로 걸려 있다. 적색 현판에 흰색 글씨로 ‘효자증통정대부이조참의 이상기지문 상지십구년계해월일명려(孝子贈通政大夫吏曹參議李相夔之門上之十九年癸亥月日命旌)’라고 쓰여 있다. 내용은 ‘효자 증통정대부이조참의인 이상기의 문이다. 숙종 임금 상 19년[1693년] 계해 몇 월 며칠에 정려를 명함.’이다.
1693년(숙종 19)은 간지로 ‘계해(癸亥)’년이 아니라 ‘계유(癸酉)’년이다. 계해년이 맞다면 정려문을 내린 시기는 1693년이 아니라 그 10년 전인 1683년(숙종 9)이 된다. 『안산군읍지』충효열조에도 ‘숙묘조계해(肅廟朝癸亥)’로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83년에 정려가 내려진 것이 더 설득력 있다.
[현황]
이상기의 정려판(旌閭板)은 시흥시 산현동 151에 13세손인 이석우의 집 철제 대문 위에 걸려 있다. 시흥시에서 관리하고 있지는 않고 이상기의 후손이 개인 소장으로 집안에 두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정려를 받은 이력은 당사자와 그 집안뿐 아니라 해당 마을의 경사였다. 국가에서는 기념비를 세워 주고 세금을 면제하거나 생전 혹은 사후에 벼슬을 올려주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 원칙이 점차 무너져 정려를 남발하는 경향도 다소 있었으나, 이상기 정려문이 세워질 무렵은 앞서의 원칙이 비교적 살아있을 때로 판단된다. 이상기 정려문은 지역사회 인물에 대한 연구 자료로 활용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