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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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瑞衡火災事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춘진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475년 - 서산 가야산 화재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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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84년 - 전소된 개심사 건물 중창 |
발생|시작 장소 | 금산 |
성격 | 화재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김서형 |
[정의]
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경과]
김서형(金瑞衡)은 1475년(성종 6)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를 지내면서 훈련을 핑계로 수시로 군졸들을 징발하여 사냥을 즐겼으며, 때마다 이를 맞이해야 하는 인근 각 고을의 수령들에게 부담을 주었다. 그러던 중 1475년(성종 6) 가야산에서 역시 사냥을 하다 금산(禁山)에 불을 놓아 국가에서 배양하는 소나무를 모두 불타게 하고, 개심사(開心寺)의 건물까지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결과]
『성종실록(成宗實錄)』에 김서형은 감찰 정찬(鄭儹)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불을 놓아 산을 태우고 개심사를 연소시킨 죄로 사헌부로부터 결장(決杖) 100대와 도(徒) 3년을 판결 받았으나, 왕이 다만 임명장만을 거두도록 명하였다. 한편 이 사건이 조정에 알려지기 전 개심사 승려가 충청도관찰사 성윤문(成允文)에게 장고(狀告)하였으나, 이를 숨겨주었음이 밝혀져 같이 추국 받았다. 이 사건은 추후 김서형이 복직되어 충주목사(忠州牧使), 영안남도절도사(永安南道節度使) 등에 진출할 때마다 매번 논쟁거리가 되어 관리의 자질을 시험받게 되었다. 한편 전소된 개심사 건물은 1484년(성종 15)에 중창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이 지역 지방관의 재임 실태와 조선 전기 가야산의 화재 및 개심사 전소 사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