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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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百鳳墓 |
이칭/별칭 | 한백봉의 묘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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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 단독분 |
건립시기/일시 | 1950년 |
관련인물 | 한백봉 |
높이 | 1.2m |
지름 | 2.4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
소유자 | 청주한씨 문정공파 종회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는 한백봉의 묘.
[개설]
한백봉[1881~1950]은 1919년 3.1운동 때 광주군 돌마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로, 본관은 청주, 자는 성의(聖儀), 호는 송헌(松軒) 또는 벽송(碧松)이며, 한영회(韓榮會)의 3남이다. 1890년경부터 10여 년 간 분당리(盆唐里)에서 진사 서상만(徐相晩)의 문하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1900년 부친이 사망하자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2월 말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차 상경하였다가 3.1운동에 참가한 후, 향리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고 한순회(韓順會) 등 돌마면 내 유지들과 논의하였다. 3월 27일 분당리 장날을 이용하여 봉기하기로 계획하고 당일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9년 8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징역 1년으로 감형되어 복역 중 특사로 곧 석방되었다. 1927년에는 한순회를 중심으로 이대헌(李大憲), 유인목(兪仁穆) 등과 함께 신간회(新幹會) 광주지회를 조직하고 1930년까지 지회 임원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위치]
묘소는 율동 번지점프장 뒤편의 통덕랑(通德郞) 한충회(韓忠會)와 공인(恭人) 밀양박씨 묘소의 상부에 남서향(南西向)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봉분의 크기는 높이 120㎝, 직경 240㎝이다.
[형태]
원형의 단독분은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으며, 묘표석(墓表石)이 없어 묘역을 쉽게 확인하기가 곤란하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주한씨 문정공파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