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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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場市 |
영어의미역 | Markets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고동환 |
[정의]
조선시대 충청남도의 논산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개설된 장시망.
[개설]
조선시대 논산 지역의 장시를 살펴보면, 은진에는 읍내장·저교장(楮橋場), 강경장(상·하장으로 구분), 논산장, 연산에 사교장(沙橋場)·두마장(斗馬場) 등의 장시가 있었지만 노성에는 없었다. 논산이 위치한 금강 유역은 충청도 지역 중에서도 가장 장시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조선 후기 충청도 전체의 장시권 평균 면적은 107㎢로, 전라도의 91㎢에 이어 전국에서 둘째로 장시밀도가 높았다. 장시밀도가 높다는 점은 논산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이다. 또한 논농사가 발달하고 전결수(田結數)가 많아 인구 부양 능력이 컸으며, 동시에 농가의 상품경제화 수준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음을 의미한다.
[개시일]
논산 지역 각 장시의 개시일은 강경장이 4,9일이며, 은진 읍내장이 3,8일, 저교장 2,7일, 논산장 3,8일, 사교장 5,10일, 두마장 1,6일, 연산 읍내장 3,8일이었다. 연산 읍내장과 논산장, 은진 읍내장 개시일이 겹칠 뿐, 다른 지역은 개시일이 고르게 분포하였다. 논산 지역 장시들은 이웃한 장시 간에 개시일을 달리 하면서 긴밀한 연계관계가 형성되었다. 인접한 장시 간의 개시 간격이 하루나 이틀이어서 지역 주민은 언제든 편하게 장을 볼 수 있었다. 행상들은 특정 장을 본 후 그 날 중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며, 다음 날에 열리는 장시를 구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주요 유통 물품]
1. 강경장
1909년 조사 자료에 의하면, 강경장은 충청도의 은진·노성·석성·금산·연산·논산·부여·임천·공주·홍산 등은 물론 전라도의 여산·용안·익산 등지에서 산출되는 미곡·잡곡·소가죽[牛皮] 등의 잡품이 모두 집하되었다. 그리고 전라도의 목면·마포, 서울로부터의 중국 견직물, 전주로부터의 종이·세공물, 인천 등지의 개항장을 거쳐 수입된 서양 직물, 서해나 남해에서 어획된 수산물도 강경을 통해 각 지방으로 유통되었다.
2. 논산장
논산장에는 연산·금산·노성·공주·은진·부여·석성 등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미곡이나 소 등이 유통되었다. 1년 거래액은 217만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3. 두마장
연산 두마장의 경우 은진·노성·진산·진잠·여산 등지에서 생산된 잡곡·면화·면포·종이·어물·소 등이 유통되었다. 1년 거래액은 4만 8517원으로 추산된다.
[장시망의 중심 강경장]
논산 지역의 장시망은 강경을 중심으로 하나의 교역권을 형성하였다. 강경장이 열리는 4,9일과 겹치는 장시가 없다는 점은 이 지역 장시가 강경장을 유통 중심지로 하여 매우 유기적인 연계망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강경장은 금강 수운을 기초로 주변 지역에서 산출되는 생산물의 집하·배급 기능을 하는 광역의 유통 중심 시장인 것이다. 강경의 가장 중요한 집산화물로서 외부로 반출되는 상품은 미곡이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상품은 소금이었다. 강경장은 충청도 지역 시장권의 핵심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