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개태사 솥뚜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군에서 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1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을 크게 물리치고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것이 부처님의 가호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천호산 기슭에 개태사를 건립하여 국찰로 삼았다. 그 후로 전국 각지에서 승...
-
조선 후기 이하곤이 개태사 옛터를 지나며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과개태사구지유감(過開泰寺舊址有感)」은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의 문집 『두타초(頭陀草)』9책에 수록되어 있다.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여러 사찰과 암자를 찾아다녔던 이하곤이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를 황산(黃山)에서 토벌한 기념으로 세운 개태사의 유허를 지나며 그 사연을 읊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왕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을 멸망시키고 대망의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 태조 왕건은 부처의 가호로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도선 국사의 도움을 받아 천호산 기슭에 개태사를 창건하여 삼국 통일을 기념하고, 국태민안(國泰...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서 왕전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왕전리 또는 왕밭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전투를 하기 위하여 황산벌에 진을 치고 있었다. 연일 계속된 싸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왕건은 진영을 둘러보고 난 후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서 천호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황산(연산)에 이르러 후백제 군사와 전투를 벌였다. 양쪽 군사들은 대낮이면 격전을 벌이고 밤엔 피로에 지쳐 전투를 멈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건이 꿈을 꾸었다. 자신이 큰 밥솥을 머리에 이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
-
충청남도 연산면 천호리와 화악리에서 마을의 당산목인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실려 있다. 왕건은 황산에서 후백제군을 제압한 뒤 그 공이 부처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부처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지금의 개태사를 짓게 하였다. 왕건은 절을 다 지은 후 공이 큰 두 사람을 가려 느티나무 묘목을 하나씩...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대한불교 법상종 소속 사찰. 936년(태조 19) 황산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여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창건하기로 하였다. 940년 개태사가 완공되자 왕건은 화엄법회를 열고 친히 소문(疏文)을 지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호남선 기차역.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사찰이다. 개태사 인근에 있어 이름 붙여진 개태사역은 호남선의 철도역으로 건립되었다. 1944년 4월 9일 광석신호장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6년 2월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1968년 11월 29일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고, 1969년 10월 1일 개태사역으로 역명...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개국 사찰이다. 936년 창건되어 940년 완공되었다. 개태사 오층석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치하기 위해 건립된 석조물로 금당과 더불어 경내의 중앙에 위치하였다. 기단부는 대부분 결실된 채 탑신부와 상륜 일부가 남아 있다. 평면 방형에 탑신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고려 전기 사찰 터. 태조 왕건은 936년(태조 19) 황산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후, 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여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창건하기로 하였다. 『고려사』 태조세가 19년조에 따르면 “이 해 광흥사, 현성사, 미륵사, 사천왕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 있는 고려 전기 가마솥. 개태사 철확은 원래 개태사 창건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이 승려 5백여 명이 밥을 지어먹을 솥으로 내려 준 것이라고 전한다. 개태사가 폐허가 된 이후 벌판에 방치되어 있다가 1887년(고종 24)의 정해년 대홍수 때 4㎞ 정도 떠내려가 연산읍 앞 냇가에 방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일본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져가려...
-
후백제의 초대 왕. 아버지는 농민 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된 아자개(阿慈介)이며, 어머니는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 중 누구인지, 또 그 성씨가 무엇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동생은 능애(能哀), 용개(龍蓋), 보개(寶蓋), 소개(小蓋)이며 누나는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 견훤은 892년(진성여왕 6) 신라 왕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무진주(武珍州, 현 광주광역시)를...
-
고려 건국 이후부터 고려 말까지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통일신라시대에 웅주와 전주의 관할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논산 지역은 고려조에 들어와 웅주가 공주로 개칭되면서 모두 공주의 관할 구역이 되었으며 연산군(連山郡), 덕은군(德恩郡), 니산현(尼山縣), 시진현(市津縣)이 그 구체적인 지역이었다. 연산군은 통일신라시대에 황산군이라 불리었으나 고려 초에 개명되어 현종 9년에 공...
-
고려시대에는 각 지역에 걸쳐 투박하지만 거대한 불상들이 많이 조성되었다.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시대에 성행한 거대 불상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현존 국내 최대의 고려시대 미륵보살상이다. 고려 전기인 968년(광종 19)에 제작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경기·충청 일대에서 특징적으로 조성되었던 토착성이 강한 불상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고려...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 금석문(金石文)은 쇠로 만든 종이나 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글자나 도형으로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다. 따라서 고대 등 과거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제의 용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농촌 체험 관광. 그린투어리즘은 농촌의 자연 경관·전통 문화·생활·산업을 매개로 한 도시민과 농촌 주민 간의 교류 활동으로, 도시민에게는 휴식 휴양과 새로운 체험 공간을 제공하고 농촌에는 농산물 판매·가공 산업·숙박 음식물 서비스 등을 통한 소득원을 제공하는 지역 활성화 운동이다. 농촌 지역에서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이에 따른 지역 경제의 침체로 인해 농업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1996년 초 논산시에서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의견을 취합한 후 관촉사 은진미륵을 비롯한 논산에서 자연경관이 수려하거나 이름난 명승고적 11곳을 1차적으로 모았다. 이 안을 가지고 당시 논산시의회를 비롯하여 충청남도논산계룡교육지원청, 논산문화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 등의 의견을 모아 1996년 3월 30일 확정한 것...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간의 생활 풍습.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 민중들이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양식이다. 또 각 절기에 따른 생활 풍습과 생산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이는 민속 문화의 창작자와 수요자 자체가 생산자 농민이거나 어민·수공업자·상인들이었던 탓이다. 민의...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인2리 지밭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왕건을 도운 무녀를 기려 지내는 마을 제사. 부인 당산제는 왕건을 도와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 조력한 무당을 산신으로 신격화한 독특한 사례이다. 이 마을 산제의 역사는 분명치 않지만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관련 설화가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더욱이 그 의례 및 부인당에 수반되는 엄격한 금...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황산벌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꿈을 꾸었는데 여기에 사는 무당에게 해몽을 듣고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그 무당에게 부인이라는 칭호를 주고 부인당을 지어 주었다. 부인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부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지역으로, 부인당이 있었으므로 부인처면(夫人處...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활동하는 종교. 논산 지역은 백제의 옛 수도인 공주, 부여와 인접하고 있어서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널리 신앙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찰의 건립 기록은 고려시대 때이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936년(태조 19)에 개태사를 설립하여 호국도량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논산 지역에 불교가 성행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불교 관련 문화유산. 논산 지역의 주요 불교유적으로는 개태사와 그 경내에 있는 개태사 삼존석불입상, 개태사 오층석탑, 개태사지 석조(石槽), 개태사 철확(鐵鑊) 등이 있다. 그리고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다. 개태사의 옛터로 현 개태사의 북쪽 약 2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의 절터인 동북쪽에는 건물 자리와 주춧돌, 석조, 불대좌(佛...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이나 시월 상달에 산신을 모시고 드리는 마을 제사. 산신제는 산악 숭배의 전통을 잇는 대표적인 마을 신앙의 하나이다. 건국신화에 녹아 있는 천신강림(天神降臨)의 우주관이나 고대의 제천의례(祭天儀禮)에서 잘 드러나듯이 산신 신앙은 천신 숭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신라의 삼산오악(三山五嶽)이나 백제의 삼산신앙(三山信仰), 그리고 고구려의 산천제(...
-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영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순천박씨는 우리나라 박씨의 원시조인 박혁거세의 후손 박영규(朴英規)를 시조로 한다. 박영규는 승주 사람으로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후백제 왕 견훤의 사위였으나 견훤의 뜻에 따라 왕건에 내응(內應)하여, 후백제의 신검을 토주(討誅)한 공으로 좌승(佐丞)이 되어 땅을 하사받았다. 순천박씨의 세계(世系)는 중시조 박...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탑정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왕건이 남하하여 견훤을 정벌할 때 탑정리에 주둔하여 어린사를 짓고 절 주변에 성을 쌓았다고 하나 일제강점기에 탑정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수몰되었다. 탑정저수지를 조성하면서 수몰되어 규모나 크기를 알 수 없다. 지금은 당시 절 안에 있었던 논산 탑정리 석탑만이 저수지 제방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현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의 변천 과정과 과거의 사실. 현재까지 조사·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에 의하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의 인간 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하여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다. 논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동고서저...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군과 격전을 벌일 때의 일이다. 하루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철관을 쓰고 바다에 들어가자 닭이 울고 수만의 집에서 방망이 소리가 요란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지금의 부인리에서 살던 무당이 해몽을 하기를,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진 것은 임금 왕(王) 자를 의미하며, 철관 방망이 소리는 등극...
-
고려 후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 해적의 총칭.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을 총칭하여 왜구라고 한다. 일찍이 삼국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일본의 해적이 침입한 바 있지만 침입 규모나 피해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친 시기에는 거의 해마다 침입했고 피해도 막대하여 ‘왜인(倭人)들이 노...
-
이도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의(全義)는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통일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익찬 2등 공신 삼중대광태사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공주 출신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자 공주에 이르렀을 때 금강이 범람하여 멈추자 도강 방법을 주도한 공으로 도(棹)...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충청남도 논산 지역은 유교, 불교, 천주교 및 개신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러 신흥종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종교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지난 100년은 초반에는 국가와 민족이 존망의 기로에 섰던 시기였으며, 후반에는 근대화를 통하여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희망찬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황도유학, 황도불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와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에 걸쳐 있는 산. 산이 용마루 같이 길게 6㎞가량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갔으므로 누르기재, 또는 황산(黃山)이라고 하였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일리천에서 크게 이기고, 계속 추격하여 이 곳에 이르러 항복을 받아 마침내 삼한을 통일하여 고려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도와주신 산이라 하여, 천호산으...
-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파평윤씨는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공신에 책록된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고려시대 유명한 문벌귀족 중의 하나였다. 윤신달과 관련해서는 파평현 용연(龍淵)에 있던 옥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부이므로 그전의 다른 이야기나 모습은 알 수 없으며, 그의 후손들이 파평현을 근...
-
조맹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풍양조씨는 고려조 개국공신 조맹(趙孟)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조맹은 후삼국시대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으로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렀다. 풍양조씨들은 시조 조맹의 출생지이자 세거지였던 풍양(豐壤, 현 경기도 남양주시)을 본향으로 두었다. 풍양은 조맹은 이곳에서 태어나 노년까지 살...
-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논산 지역은 한양과 전라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의 하나였다. 충청도 공주와 전라도 여산 사이의 논산 구간을 정리하면, 노성면-부적면 부인리-부적면 마구평리-부적면 아호리-은진면 교촌리-채운면 야화리-채운면 장화리-채운면 삼거리-강경포로 나타낼 수 있다. 이들 지역의 일부 마을에는 주요 교통로를 지키는 동시에 길손의 안녕을 도모하는 서낭이나 노표(路標) 장승 등이...
-
660년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의 벌판. 황산벌은 660년 백제와 신라가 대규모 전투를 벌였던 당시 백제의 행정구역이었던 황등야산군의 벌판으로,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일대의 벌판을 말한다. 936년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신검(神劒)과 일리천(一利川)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도망가는 적군을 추격하여 끝내 이곳에서 후...
-
후삼국시대 후백제 관할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한국역사에서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라 함은 892년 견훤이 광주를 점령하고 왕을 칭한 때부터 936년 고려에 의해 한반도가 다시 통일되기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때 견훤(甄萱)이 세운 나라가 후백제로 신라·태봉(후고구려)과 함께 후삼국을 이루었다가 936년 고려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이 시기 논산 지역의 역사를 관할 국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위치한 개태사는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킨 직후인 936년에 후백제의 옛 수도 부근이자 바로 후백제를 항복시킨 역사적인 장소에 창건한 후삼국 통일의 기념비적 사찰이다. 고려로서는 일종의 전승 기념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태사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개태사 창건 배경과 개태사 삼존석불입상의 양식과 특징으로 미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