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의 가평이씨 묘역. 가평이씨 집안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 1394~1468)이 송리의 딸과 혼인하면서, 연산면 화악리에 세거하던 여산송씨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화악리와 가까운 청동리에 세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다림의 아들인 이형손(李亨孫, 1418~...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성(子誠), 호는 반곡(盤谷). 권겹(權韐)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전(權佺)이며, 아버지는 집의를 지낸 권양(權讓)이다. 어머니는 홍사도(洪思道)의 딸이다. 권수는 권속(權謖)에게 입양되었다. 아들은 권적이며, 딸은 현감 김지경에게 출가하였다. 권수는 1679년(숙종 5) 진사가 되고, 1692년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사정리 소재 권수 묘소 앞에 세워진 조선 후기 묘비. 권수의 자는 자성(子誠), 호는 그가 살던 고장의 이름을 따서 ‘반곡(현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즐겼으며, 책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또 성품이 강직하고 반듯해서 관직에 있을 때는 바른 정치를 하고 옳은 말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에 따라 홍문관에...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사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권수의 묘소. 권수(權𢢝, 1656~1718)의 본관은 안동, 자는 자성(子誠), 호는 그가 살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반곡(盤谷, 지금의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이라 하였다. 권수는 성품이 굳세고 반듯하여 관직에 있을 때 바른 정치를 하고 옳은 말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항상 청렴·신중·근면을 신조로 공무에 임하였으며, 공...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 금석문(金石文)은 쇠로 만든 종이나 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글자나 도형으로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다. 따라서 고대 등 과거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제의 용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소재 기계유씨 묘소 앞에 세워진 조선 후기 묘표. 기계유씨는 김집의 아내로 좌의정 유홍의 딸이다. 1592년 김집에게 시집 왔으나 자식 없이 별세하였다. 사후에 김집 묘소와 거리도 떨어져 있고 비석도 없었기 때문에 기계유씨 묘표를 건립하였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를 지낸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형은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겸광은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후 감찰, 정언, 병조좌랑, 병조정랑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에 승진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공신 김겸광의 신도비. 김겸광 신도비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좌리공신 3등으로 광성군에 봉해진 김겸광의 공을 추대하여 1492년(성종 23)에 세웠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1㎞ 가다 보면 계백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직진하면 고정리가 나온다. 신도비는 쇠머리에 위치해 있다. 1507년(...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묘역. 김계휘(金繼輝, 1526~1582)의 본관은 광산, 자는 중회(重晦), 호는 황강(黃岡)이다. 현감 김호(金鎬)의 아들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버지이다. 1549년(명종 4)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이조좌랑·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1566년(명종 21) 직제학으로 문과 중시에 율과로 급제하여 대사헌·예조판서·경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의 신도비. 김계휘(金繼輝)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좌의정 김국광의 현손이며, 현감 김호의 아들로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이다. 김계휘 신도비는 원래 고정리 마을 안에 있었으나 후대에 마을 입구로 옮겼다고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 정도 가면 남쪽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 정도 들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명.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현감 김호(金鎬)이며, 어머니는 공조정랑 이광원(李光元)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형은 김계휘(金桂輝)이다. 조카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김공휘는 율곡(栗谷) 이이(李珥)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월사, 김선원, 김청음 등과 교유하였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공휘 묘비.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전과 예학을 강구한 김공휘는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어느 요직에서건 치적이 현저하였다. 김공휘는 연산 휴정서원에 배향되었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관경(觀卿), 호는 서석(瑞石).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아우는 김겸광(金謙光)이다. 김국광은 1441년(세종 24) 문과에 병과 7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445년(세종 28) 황해도도사로 승진하고 144...
-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국광의 신도비. 김국광 신도비는 구 신도비와 신 신도비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구비는 1489년(성종 20)에 세워졌고, 신비는 1726년(영조 2)에 세워졌다. 왕의 총애를 받았던 김국광은 병이 들어 사직한 뒤 병치레를 하였다. 왕이 이를 슬퍼하며 부의를 내리고 사후에 쓸 장사 지낼 기구를 보내주었는데, 김국광의 아들 김극...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무화(茂和).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 아버지는 좌참찬 김겸광(金謙光), 어머니는 사직 진계손(陳繼孫)의 딸로서 삼척진씨(三陟陳氏)이다. 숙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극개는 1496년(연산군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식년시 문과에 병과 19인으로 급제하였다. 병조정랑, 훈련원...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고,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김극수는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라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에 제수되었고 원종공신(原從功臣) 회맹제에 참여하였다. 군자감판관을 거쳐 충훈부경력으로 재직 중 아버지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익겸(金益謙)이고, 어머니는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4세손이자 영의정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의 증손녀이며 예조참판 윤지(尹墀)의 딸로서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숙부는 김익희(金益熙), 동생은 『구운몽(九雲夢)』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증조할아버지는 예학(禮學)의 대가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충렬공(忠烈公) 김익겸(金益謙)이다.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형은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이며,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조카딸이다. 어머니 해평윤씨 집안은 고조부와 증조부가 영의정을...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성휘의 묘비. 김성휘는 유복자로 태어나 배움을 얻지 못했으나 산업에 힘을 기울여 인근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자 군량미를 헌납하여 국익을 도왔다. 벼슬은 형조참의에 이르렀고, 평생 일군 재산으로 구제 사업을 하면서도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양촌면사무소에서 대둔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수남의 정려. 김수남(金秀南, 1576~1636)은 광산김씨로, 자는 여일(汝一), 호는 만치당(萬痴堂)이며, 사계 김장생의 문인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은진현 충신조에 의하면, 김수남은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이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호종한 이후 적군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유휘의 묘표. 김유휘는 광산인으로 부사직을 지냈고, 손자인 김곤보(金坤寶)가 1620년에 병기 수송에 응모했던 일로 인하여 공조 참의가 추증되었다. 양촌면사무소에서 대둔산 운주 방면으로 1㎞ 정도 가다가 우회전한다. 양촌리 방면으로 3㎞ 정도 가다 보면 임화리 마을에 도착한다. 김유휘 묘표는 임화리 마을의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은휘의 묘갈. 김은휘(金殷輝, 1529~1611)의 자는 경회이고, 본관은 광산인으로 김계휘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출중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안력이 뛰어나서 책을 볼 때 10행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율곡 이이 및 구봉 송익필과 친교하였다. 관직은 천안현감을 비롯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논산에서 국도...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고령.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장생(金莊生)이고, 어머니는 훈련원 참군 노승주의 딸이다. 김임은 논산시 노성면 일대의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만석의 거부로서 사람들이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선비로서 풍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에 있다. 1513년(중종 8)에 호조판서를...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자건의 묘비. 김자건은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시문에 뛰어났으며 서예가였다. 자는 이계이고, 광산인이다. 좌찬성 김극복의 후손으로 김덕린의 아들이다. 1656년(효종 7)에 재학으로 추천되어 선공감역 빙고별감을 지냈으나 효종이 승하하자 벼슬을 버리고 산수를 벗삼아 초야에 묻혀 살았다.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장생의 신도비. 김장생 신도비는 성품이 곧고 강직하며 바른 것이 무엇이며 세상의 이치란 어떤 것인가를 알고는 학문에 힘쓴 김장생의 공과 인품을 기록하여 널리 후대에 알리기 위해 1634년(인조 12)에 건립되었다. 김장생 신도비는 김장생 묘소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1㎞ 가다 보면 계...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석서리에 있는 조선 중기 효자 김정망의 정려. 김정망의 자는 숙우(叔遇)이고, 호는 삼육재(三六齋)이다. 오강(梧岡) 김성휘(金成輝)의 손자로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효우근신(孝友謹身)한 것을 계기로 추천이 되어 관직이 현감에 이르렀는데, 효우(孝友) 두 자를 손바닥에 써넣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부친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정성껏 병간호를 하면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종윤의 묘표. 연산역의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고정리 마을에 이른다. 김종윤 묘표는 고정리 거정 터에 위치하고 있다. 오랜 세월의 풍우로 자획이 마모되어 묘 옆에 새로이 묘비를 세워놓았다. 1538년(중종 33)에 세워진...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집의 신도비. 김집 신도비는 사계 김장생의 아들로 태어난 김집이 아버지 못지않게 학자로서 뛰어나고 청렴한 삶을 산 것을 후손에게 길이 알리고 본받게 하기 위해 1659년(효종 10)에 양산리 고운사지에 세웠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계룡 방향으로 약 13.8㎞ 가다 보면 계백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4....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철산의 묘비. 김철산의 아버지는 증좌찬성(贈左贊成) 김문(金問)이며, 어머니는 증정경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천품이 순후하고 강직하여 모두가 숨은 덕이 있다고 칭송하였다.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에 책봉되었고,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의정부사 광성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처음 세워진 묘비는 오랜 세월의 풍우로 인해 마모되었고, 172...
-
충청남도 논산시 대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논산석교를 중수한 뒤 세운 2기의 비. 은진현감 서증보(徐曾輔)가 큰 장마로 유실된 다리에 큰 돌을 놓아 논산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고,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통행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비로, 1846년(헌종 12)과 1858년(철종 9)에 건립하였다. 논산시에서 득안대로를 타고 강경 방향으로 약 2㎞ 가다가 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윤환 선생 고택 내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윤황(尹煌, 1572~1639)은 윤창세(尹昌世,1543~1593)의 아들로 동부승지와 이조참의 등 여러 요직을 역임했으며,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 아들은 윤선거이고, 손자는 숙종 대 소론의 거두였던 명재 윤증이다. 윤환 선생 고택은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한천리에 있는 조선 중기 효자 도처중의 정려. 도처중(都處中, 1642~?)은 본관이 팔거(八莒)로, 지극한 효행이 알려져 1645년(인조 23) 명정을 받았고, 1679년(숙종 5) 예조에서 편찬한 효행등제(孝行等第)의 상물질(賞物秩)에 올라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도처중의 효행 사적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효자 도처중 정려는 상월면 한천리 안골 입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원정비. 돈암서원 원정비는 돈암서원을 세우게 된 배경과 서원의 구조를 남기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의 학문과 성품을 칭송하는 글도 새겨 놓았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2.3㎞를 가면 도로 남쪽에 돈암서원 입구가 있다. 돈암서원 원정비는 서원 내의 강당 건물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호·김계휘를 제향하는 재실. 모선재는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조부(祖父)인 김호와 부친 김계휘(金繼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자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략 1700년대 초반인 것으로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 가면...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4리 모청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무작금의 충노비. 무작금 비는 이례적으로 김수남의 정려와 묘소에 각각 한 기씩 세움으로써 죽어서도 충신 김수남을 지키는 충노로서 역할을 하게 하였다. 김수남의 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에 있지만 김수남은 은진면 사람으로 정려가 연무읍 금곡4리에 있어 무작금의 비 또한 김수남 정려 옆에 세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반남박씨 입향조 박동민의 묘소. 박동민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할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박소이며, 아버지는 박응천이다. 형제로 박동현과 좌참찬을 지낸 박동선이 있으며, 아들은 사헌부집의를 지낸 박휘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눌(李訥, 1552~1631)의 딸이다. 상월면 대우리 북쪽 산록에 박동민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 아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동민의 신도비.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내야 세울 수 있는데, 박동민은 사후에 증직되어 종2품인 참판 벼슬을 받아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증조와 조부가 현달하고 형제와 아들이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이다. 묘를 이곳에 쓰고 자손들이 세거하면서 번성하고 있다. 박동민은 예빈시참봉으로 있으면서 1593년(선조 26)에 죽었으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박세기의 신도비. 숙종 때에 승지를 지낸 박세기의 본관은 반남으로, 할아버지는 반남박씨 논산 입향조인 박동민이며, 아버지는 박훈이다. 박세기가 죽은 뒤 자손들이 번창하고 부유해지자 박세기가 죽은 지 229년 만인 1920년에 증직된 좌승지 직책으로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원래는 상월면 대우리 박세기 묘소 아래에 있었는데, 2006년...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 마두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박이현과 박영서 부자의 정려. 박이현·박영서 정려는 1689년(숙종 15) 명정을 받았다. 박이현의 본관은 순천이고, 자는 여수(汝粹)이며, 참봉 대영(大榮)의 아들이다. 남명 조식과 덕계 오건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의 막하에서 동지들을 모아 고향에서 진을 치고 호남의 고경명 등과 연계...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종원의 묘표. 박종원은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나 집안이 부유하여 재산을 백성을 구휼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는 비록 입신양명하지 않았으나 백성을 위해 자산을 썼기에 왕이 이를 귀히 여겨 관직을 내렸다. 이에 1672년(현종 13) 상월면 학당리에 묘표로 기록하여 남겨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논산에서 국도 23호선을 타...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 박증의 조선 전기 묘소. 박증(朴增)의 본관은 무안(務安)으로 자는 익지, 호는 암천(巖川)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하였으며, 사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뒤 묘소가 있는 당점산으로 서원을 이건하여 당호재라 하고 그곳에서 배향하고 있다. 1933년에 복원된부적면 충...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박증의 조선 중기 묘표. 박증의 자는 익지이고 호는 암천으로 본관은 무안이다. 천성이 매우 청렴하고 강직했으며, 사후에 형조참의를 제수받았다. 본래 노성의 모곡서원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이 철폐된 이후에 묘소가 있는 당점산의 당호재와 복원된 충곡서원에서 배향되고 있다. 박증 묘표는 박증이 죽은 지 150여 년이 지난 1670년(현종 11)에 건립되...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훈의 묘표. 1797년(정조 21) 박훈의 증손이 증조부의 공을 기리기 위해 상월면 학당리에 위치한 박훈과 부인 광주김씨의 묘 앞에 세웠다. 논산시에서 국도 23호선을 타고 공주 방향으로 약 14㎞ 가다 보면 상월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지방도 691호선을 타고 약 2㎞ 가다 보면 학당리가 나온다. 박훈의 묘소는...
-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조상의 위패·영정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 사당이란 조상의 위패나 영정을 배향하고 매년 기일에 제사를 올리는 건조물을 말한다. 특히 이름난 학자나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건립된 사당을 향현사(鄕賢祠)라고 한다. 조선 태종 때에는 고려 이후의 명신을 예조에서 명단을 작성해서 각각 연고지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권장하였다. 그러...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열의 묘표. 1694년(숙종 20) 당시 논산시 가야곡면의 대표적 세거성씨인 부여서씨 인물 중 판관을 지내고 통례원 벼슬을 지냈던 서열의 묘소 앞에 있던 비석이 너무 오랜 시간 비와 바람에 의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서열의 10세손 서경조가 부여서씨 후손들과 상의하여 자금을 모...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정수의 묘표. 서정수 묘표는 논산시 가야곡면의 세거성씨인 부여서씨 중 가야곡면에 처음 입향한 입향조 서정수(徐貞壽)의 묘 앞에 세운 묘표로서, 1694년(숙종 20)에 후손인 서경조(徐敬祖)가 세웠다. 비명은 서정수가 찬(撰)하고 서(書)하였다.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난 육곡교를 건넌 후 북쪽으로 향...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삼문의 묘비. 매죽헌(梅竹軒) 성삼문(1418~1456)은 1435년(단종 1)에 생원 급제하였고, 1438년 대과에 급제하여 세종, 문종, 단종을 내리 섬기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단종이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세조에 의해 처형을 당하였는데, 지금의 노량진역 부근에서 다리를 꿰뚫고 사지를 찢는 처형을 받았다. 이런 성삼문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문림의 묘표. 여산송씨(礪山宋氏)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연산 화악리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송서(宋瑞)의 아들인 송윤번(宋允蕃)이 진잠(鎭岑)에 살다가 그 아들 송전(宋琠)이 화악리로 이거해 살기 시작했다. 이미 송윤번의 셋째 딸이 고성 사람과 결혼하여 고양리에 내려와 세거하게 되었고 송전(宋琠)의 딸은 기계인(杞溪人) 유효...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원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수탕석교에 대한 3기의 비석.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석성현조」에 “수탕포와 수탕석교가 석성현의 동쪽 7리에 있고, 수탕원이 동쪽 13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성동면 지역이 포구에 원과 다리가 있는 중요한 교통 요지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수탕석교를 중수하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긴 수탕석교비군은 사적비,...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증이 낚시를 즐겼던 바위. 박증(朴增)[1461~1517]의 자는 익지(益之), 호는 암천(巖川)이며, 무안박씨 논산 입향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이(朴頤)[1402~1478]이고, 아버지는 박임경(朴臨卿)[1436~?]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풍채가 빼어나며 대인장자 같다고 하여 기린(麒麟)이라 불렸다. 효심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묘비. 양천허씨는 17세의 나이에 당시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천허씨는 이미 김철산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있었던 연산면으로 내려와 아들을 낳고 가문이 번창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양천허씨의 아들인 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 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여산송씨 묘역. 여산송씨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연산면 화악리에 입향하여 연산 지역에서 토착 세력으로서의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697호선을 따라 3㎞ 가면 오른쪽으로 국도 1호선과 만난다. 국도 1호선을 따라 3㎞가량 가다가 계백로에서 화악리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충청남...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강당.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군. 옥녀봉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금강이 옥녀봉 앞에서 휘돌아 흘러 넓은 강폭을 이루며, 잔잔한 물가에 물고기들이 노닐며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자연 경치를 즐기며 곳곳에 암각을 새겨 놓은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암각 해조문은 선박들의 왕래를 돕기 위해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에 있는 조선 말기 원항교를 재건하면서 세운 비석. 채운면 야화리 방축천 위를 지나는 호남선 철교 아래 북쪽에 조선시대의 다리인 원항교가 있고, 다리의 동쪽에 원항교 개건비가 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1900년(고종 37) 4월에 큰비로 원항교가 무너지자 군수 이범선의 주도로 온 고을 사람들이 힘과 재물을 모아 다리를 개건하고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유연의 묘소 앞에 세워진 묘표. 유연(柳淵)은 통정대부를 지내고 노성면 병사리로 낙향하여 살았다. 아들이 있었지만 후사가 없었다. 두 딸을 두었는데 한 명은 청주한씨에게, 다른 한 명은 파평윤씨에게 출가하여 재산을 두 딸에게 분재하였다. 병사리에는 파평윤씨들이 오래전부터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유연의 묘와 큰사위인 한여헌 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경교의 묘비. 윤경교는 파평인으로 자는 양일, 호는 장호이다. 윤황의 증손이며, 윤변의 아들로 1632년(인조 10) 9월 18일에 태어났다. 1657년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1663년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지평에 이르렀으며, 1670년(현종 11) 문학이 되었다. 남인 허적을 탄핵하다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1681년 공...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문거의 묘비. 윤문거의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며, 본관은 파평으로 팔송 윤황의 아들이다. 김집의 문인으로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었고, 1633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과의 화의가 그릇됨을 주장하고 끝까지 싸워 나라를 지킬 것...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문거의 묘소. 윤문거는 본관이 파평(坡平)이고 자는 여망(汝望)이며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의 딸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으로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과 교유하였으며, 조익(趙翼), 김상헌(金尙憲) 등에게도 배웠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상정마을에 있는 윤문거의 신도비. 윤문거의 본관은 파평으로,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다. 대사간 윤황의 아들로 태어나 1633년(인조 1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친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임금을 호종하였다. 1639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상을 마친 후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수의 묘표. 윤수는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장남이다. 자는 명숙, 호는 운봉으로, 아들이 없어 윤황의 아들 윤순거가 양자로 들어와 대를 이었다. 명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죽주도호부사를 지냈고 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윤수가 죽은 지 17년 지났을 때 묘표를 세워 자손들이 알아보도록 하게 해달라는 윤덕요의 요청에 윤순거가 명을 썼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윤순거의 묘역.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자는 노직(魯直), 호는 동토(童土)이다. 아버지는 윤황(尹煌)이나 큰아버지 윤수(尹燧)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윤순거는 파평윤씨의 정신적 전통과 인물 양성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파평윤씨 종학당을 건립하고 집안의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병사 종중과 규약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의...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전의 신도비. 윤전은 파평인으로 윤창세의 아들이고 팔송 윤황의 아우이다. 성혼의 문인으로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피하여 왕을 공주까지 호송하여 공조정랑이 되었다. 정랑을 지내다가 필선이 되었고, 병자호란을 만나 강화도에서 전사하였다. 윤전은 사후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충헌의 시호를 받...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절과 부인 남원윤씨의 묘표.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구찬을 지낸 윤절과 그의 부인인 남원윤씨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표로서, 1716년(숙종 42)에 묘표를 세워 묘의 주인을 밝히고 그의 행적과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웠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2.8㎞ 정도 가면 도로 왼쪽에 병사리 1구 마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진의 신도비. 윤진은 1631년(인조 9)에 태어나 1698년(숙종 24)에 사망하였다. 윤진의 자는 자경이고 호는 덕포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윤순거의 아들로 1652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빙고별검으로 있다가 1666년(현종 7)에 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지평, 이조좌랑, 수찬, 병조정랑 등을 거쳐 부교리가 되었다. 왕에게 붕당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창세의 묘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는 노종 5방파의 아버지이며, 파평윤씨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윤창세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윤창세는 처음 논산으로 이거한 파평윤씨 윤돈의 아들로 노성면 병사리로 처음 터전을 옮긴 인물로서, 평소 효심이 깊어 자손과 제자들로부터 효렴공(孝廉公)이라 불렸으며, 나라에 대한 충절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행교의 묘표. 윤행교의 묘는 원래 공주 작곡에 있던 것을 전주 팔봉산 아래로 이장하였다가 후에 다시 지금의 노성면 하도리로 이장하였다. 윤행교 묘표는 묘를 이장한 후 1697년(숙종 23)에 윤행교의 가계, 성품, 행적을 기록하여 후손들이 본받을 수 있게 하였다. 공주-논산 간 구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노성면 하도리 노성비행장이...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윤황의 묘비.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파평윤씨 노종 5방파 중의 한 사람인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의 묘비로, 가계와 행적, 그가 올렸던 상소문의 내용들이 새겨져 있다. 윤황은 윤창세(尹昌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우계 성혼의 문인으로 글씨를 잘 썼다. 인조 때 문신으로 활약하였는데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 등과 척화를 강력히 주장...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윤황의 묘역. 윤황은 노성면 병사리에 세거의 기반을 마련한 윤창세의 둘째 아들로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노성의 파평윤씨 가문은 우국충절의 사족 가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윤창세의 다섯 아들은 노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노성 오방파로 불렸으며, 오방파 중에서도 윤황의 직계들이 가장 번성하...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있던 조선 후기 은진 미내에 석교를 세운 것을 기념한 비. 조선 전기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옛길이 있었고, 큰 냇물이 흘러 작은 돌다리를 놓아 통행하였다. 어느 해 큰 홍수가 나고 다리가 유실된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의 통행에 많은 불편을 주었다. 관청에서도 손을 대지 않자 이 고을 석설산과 송만운을 중심으로 황산의...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민진의 묘비.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 당시 외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민진의 증직과 행적을 새겨놓은 묘비이다. 이민진 묘비는 병자호란이 끝난 지 200여 년이 지난 1838년(헌종 4)에 세워졌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200여 년이 지난 후인 1838년(헌종 4)에 이민진의 충절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정려를 하사받게 되었다. 이민...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사길의 묘비. 이사길(李師吉)은 1639년(인조 17)에 이양의 아들로 태어나 사산감역관을 지내고 임기를 마칠 즈음에 병을 얻어 사망하자 노성 술골(주곡리)에 장사하고 후에 묘비를 풍비로 세워놓았다. 이사길은 1703년(숙종 29)에 사망하였는데, 1711년(숙종 37)에 아들이 출세를 하여 가선대부 사헌부대사헌에 증직되었다. 이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숫골에 있는 조선 후기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 이사길의 묘소. 이사길(李師吉, 1639~?)은 부사 이양과 진주강씨 사이에서 1639년(인조 17)에 태어났다. 훗날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의 사위로 상월면 주곡리에 들어와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가 되었다. 윤선거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노강서원 건립에 협력하였고, 사산감역을 제수받았다. 아들 이삼이 과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삼의 묘표. 이삼(李森)은 1677년(숙종 3) 상월면 주곡리에서 감역을 지낸 이사길(李師吉)의 아들로 태어났다. 윤증(尹拯)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705년(숙종 31) 무과에 급제하여 정주목사·수원부사·한성부우윤을 거쳐 벼슬이 훈련대장에 이르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올라 함은군(咸恩君)에...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묘소. 이삼은 감역을 지낸 이사길의 아들로 자는 위백이다. 1677년 상월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1735년 59세로 사망하였다.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05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대장을 거쳐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함은군에 봉해졌다. 논산시에서 공주 계룡산 서쪽에 있는 신원사 앞으로 나 있는 지방도 691호...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경의 비석. 이장경 묘갈은 가평이씨 후손들이 예산현감·안음현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던 이장경의 행적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 칭송하기 위해 1537년(중종 32)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건립하였다. 연산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600m를 가면 연산중학교가 나온다. 연산중학교의 전면에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데 여기에서...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가평(加平). 어버지는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이다. 할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이다. 이장생은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활쏘기를 좋아해 가평군이 그의 장점을 취하여 무예를 익히게 하였다. 1490년에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을 제수하였다가, 선전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장생의 비석. 이장생(李長生)은 1467년(세조 13)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0년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에 제수되었다가, 선전관으로 발탁되고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이 되어 사은사로 중국 연경에 다녀오고, 병조판서를 거쳐 평안도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동생은 이장경(...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장생의 묘소. 이장생은 가평인으로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의 아들로 1467년에 태어나 1522년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를 좋아하여 1490년(성종 21) 갑과에 급제하였고 용양을 거쳐 선전관을 지냈으며, 함경도절도사와 충청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형조참판으로 있을 때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오고 평안도절도사를 지냈다...
-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가평(加平). 자는 불부. 할아버지는 병조판서인 이다림이며, 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 어머니는 순안현령 우원구의 딸이다. 전주최씨 충의위 최희보의 딸과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함경도절도사를 지낸 이장생이다. 1449년에 태어나 1503년에 세상을 떠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30세에 통훈대부에...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철근의 묘표. 이철근은 1449년 가평군 이형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조정에 나가 경기수운관·포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통훈대부의 관직에까지 이르렀다. 1491년 충주판관으로 북정에 참여하였으며 진산군수·봉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이장생과 이장경이다. 이철근 묘표는 1508년(중종 3) 후손들에게 이철근의 행적을 칭송...
-
조선 중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종친 이향령의 묘소. 익성군 이향령은 조선 중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손자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뒤따라 호위하여 1597년(선조 30) 정의대부익성군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 진릉군을 추대하였다는 이이첨(李爾瞻)의 무고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중기 이형손의 비석. 신도비(神道碑)는 조선시대 임금이나 2품 이상의 관직에 있던 사람의 무덤 앞이나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묘갈(墓碣)은 신도비와 비슷하지만, 3품 이하 관리의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둥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제와 규모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이형손은 1418년...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에 있는 익성군 이향령의 신도비와 무인석. 이항령은 선조의 형인 하원군(河原君) 이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선조의 행재소가 있는 의주까지 여러 달 만에 호행해 선조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1596년(선조 29) 익성군으로 봉해지고 승헌으로 승진하였다. 선조의 세자인 순화군이 후사가 없자 익성군의 3자 진릉군을 후사로 삼았다. 1612...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상현(金尙鉉, 1811~1890)의 「임리정기」를 새긴 비석. 임리정(臨履亭)은 1606년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최명룡·송흥주·윤운구와 집을 지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강경의 황산(黃山) 산기슭에 있다. 이로 인하여 네 사람은 이이(李珥)의 묘당을 세우고자 약속하였으나 당시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1626년(인조...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준길 손윗누이의 묘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선산에 있는 송처자의 묘표는 10세의 나이에 요절한 처녀의 것이기에 주목이 되는데, 묘표는 후에 송준길이 세운 것이다. 이 묘표의 비신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팔작지붕 모양의 가첨석과 농대석을 갖춘 중요한 자료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누이의 죽...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청동골에 있는 조선 후기 영상과 귀상의 충노비. 연산현 사람 이민진(李敏進)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죽기를 각오하고 검은색 버선과 행전을 차고 남한산성으로 의병을 이끌고 갔다. 남한산성 근처 광주 험천에 이르러 왜적의 저지를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이민진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동행했던 노비 영상(永上)과 귀상(貴上)은 많은 전사자들 중에...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초포교 중수비. 초포(草浦)는 광석면 항월리 풋개마을로 조선시대 서울로 올라가는 큰 길이 있던 곳이다. 초포에는 노성천(魯城川)에서 내려오는 큰 냇물이 흘러 석교인 초포교를 놓아 인마의 통행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러나 초포교는 매년 여름 큰 장마가 들 때마다 다리가 망가짐으로써 그 때마다 보수를 하였다. 1674년(숙종 즉위년) 초포...
-
충청남도 논산의 노성 지역 파평윤씨 가문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양반 가문이다. 노성은 이들 파평윤씨 노종 5방파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배출된 유서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곳으로, 특히 이곳에 집중되어 분포한 종학당과 병사, 선영과 영당, 서원과 정려, 종가 고택 등은 조선시대 호서 지역 양반들의 유교 문화를 빠짐없이 접할 수 있는 문화 자원이다. 특히 후학들이 정신문화와 유교적 사회...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대둔산 서편 자락의 깊은 계곡 바위에 ‘탁영(濯纓)’이라 새겨져 있어 탁영 암각(巖刻)이라 한다. 바위에 ‘탁영(濯纓)’이란 글자가 자경은 14㎝ 정도로 암각되어 있다. 조선시대 어느 선비가 수락리 계곡에서 정취를 즐기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 시 ‘어느 때나 이 바위에 노닐며 갓 끈을...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윤씨 문중 건물. 파평윤씨 정수루는 파평윤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인 파평윤씨 종학당의 전신이자 문인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이기도 하다. 파평윤씨 정수루와 파평윤씨 종학당은 약 340여 년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파평윤씨 가문 출신의 대과 급제자 46명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었다고 전해진다. 파평윤씨 종학당은 164...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정자로 1633년(현종 4)에 송시열이 건립함. 1663년(현종 4)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짓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은 마음에 팔괘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학자 및 제자들을 강학하였던 장소로 전해지는 팔괘정은 죽림서원의 북쪽 언덕에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죽림서원의 양 날개처럼 사우를 위요하고...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팔괘정 주변에 있는 조선 중기 암각군. 우암 송시열이 팔괘정을 짓고 생활하고 있을 때 팔괘정에 글이 걸린 꿈을 꾼 뒤 새겼다고 전한다. 각자를 한 정확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논산에서 강경읍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6.32㎞를 가다 보면 산양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0.5㎞를 가면 강경읍 역전로가 나오는데,...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비. 황화정(皇華亭)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점인 황화정리에 세워져 있다. 황화정은 관리들이나 과객이 지나다가 잠시 머물러 쉬어가기도 하고 관찰사를 전송하거나 영접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전라도 신구 관찰사가 임무 교대를 하였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전라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여산 고을에서 최북단이며, 북쪽으로 위치한 작고 낮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