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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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宗敎 |
영어공식명칭 | Religion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동석 |
영원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544-659[삼정리 953] | |
영각사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덕유월성로567[상남리 1047] | |
화과원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85-1[백운리 46] | |
벽송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27-177[추성리 259] | |
법화사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상길 155-100[문정리 611] | |
사근교회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수동내동길4-17[화산리 1036-2] | |
함양교회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학사루3길9-4[용평리795-1] | |
안의교회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종로길 11-11[금천리 57-9] | |
함양성당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함양로1165[교산리 977-6] | |
안의선교성당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허삼둘길3[금천리 195-1] | |
원불교 함양교당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7길22[용평리 899-3] | |
성덕도 함양교화원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함양남서로1217[백연리 492-4] | |
증산도 함양용평도장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7길18-1[용평리 874-3] |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함양가정교회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한들로214-1[교산리 96] | |
한국SGI 함양문화회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학사루3길 44[운림리 226] | |
여호와의증인 함양회중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뇌산길55[백연리 203]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초자연적인 절대자를 믿고 숭배하는 것을 포함한 일체의 행위.
[개설]
종교란 ‘근본적인 가르침’을 뜻하는 것으로, ‘(절대자인) 신과 (그 추종자인) 인간의 재결합[Re(재)와 ligion(결합)의 합성어]’을 의미한다. 이런 결합은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생겨나는 공포와 사후(死後) 세계에 대한 불안을 해소(解消)하기 위한 가르침과 믿음에서 비롯된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역민들도 전통적인 기성종교를 비롯하여 해방 후에 유입되거나 형성된 신(新)종교 등 각자에게 적합한 종교를 신앙하고 있다. 기성종교로는 토착신앙이 있고 불교를 비롯한 외래 종교가 있다. 신종교로는 토착적인 원불교·증산교 등과 외부에서 전래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한국 SGI 등이 있다.
[토착신앙]
토착신앙은 관(官)에서 주도한 것과 민간에서 주도한 것으로 구분되는데, 현재는 대부분 소실되었다. 관에서 주도한 것으로는 사직단(社稷壇)·성황사(城隍祠)·여제단(厲祭壇) 등이 있다. 사직단은 토지를 주관하는 ‘사(社)’와 오곡을 주관하는 ‘직(稷)’에게 제사를 모셨던 곳이다. 함양군의 사직단은 군의 서쪽 약 780m에 있는데, 매년 봄·가을 군수가 제례를 주관하였다. 성황사는 각 지방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곳으로, 삼국 시대부터 각 읍별로 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모셨다. 함양군에도 군의 동쪽 1170m쯤에 성황사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여제단은 역질(疫疾)이 돌 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함양군에서는 군의 동쪽 780m쯤에 있었다.
민간의 제의로는 각 마을별로 행해졌던 동제(洞祭)나 당산제가 있다. 함양군에서도 이전에는 각 마을에서 부락의 평화와 주민의 안녕을 위하여 정월에 동제가 성대하게 거행되었지만 현재는 많이 소실되었다.
[불교]
경상남도 함양군은 북쪽으로 덕유산, 남쪽으로 지리산을 끼고 있어 일찍부터 불교의 수행자들이 머물렀고, 많은 사찰들이 창건되었다. 487년(소지왕 9)에 각연(覺然)대사가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장수사(長水寺)를 창건한 것이 불교 전래의 시초라고 전한다. 또한 신라의 왕위 쟁탈을 피해 지리산 자락에 머물던 진평왕이 경주로 돌아가면서 578년에 군자사(君子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로 통일 이전까지 행우(行宇)조사가 금대사(金臺寺)와 안국사(安國寺)를, 마적(馬跡)대사가 법화사(法華寺)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통일 후로도 영원(靈源)대사는 영원사(靈源寺)를, 심광(深光)대사는 영각사(靈覺寺)를, 결언선사는 엄천사(嚴川寺)를 지었다고 한다. 이처럼 함양군에서는 뛰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백제와 인접한 불안한 형세 속에서 민심의 안정과 통일을 위해 일찍부터 불교가 유입되어 많은 사찰들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도 불교는 여전히 숭상되면서 사찰들은 계속 발전되었고, 한편으로는 마애불을 포함한 불상과 석탑들이 각지에 조성되었다. 불상으로는 덕전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75호)과 교산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76호) 등이, 석탑으로는 승안사지 삼층석탑(보물 294호)과 벽송사 삼층석탑(보물 474호) 등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던 불상과 석탑은 당시 뛰어난 불교문화의 수준과 불교의 대중성과 지역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함양군에서는 다양한 봉불활동이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선불교의 본산이라고 할 만한 벽송사(碧松寺)가 1520년에 지엄선사에 의해 중창되어 한국불교의 법맥을 유지하였다. 또한 각 사찰에서는 함양 법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91호]을 비롯한 불상, 함양 법인사 감로왕도[보물 제1731호]를 포함한 탱화, 함양 벽송사 벽송당 지엄 진영[시도유형문화재 제316호] 등의 수준 높은 다양한 문화유산들을 남겼다.
일제 강점기에도 함양 읍내에 보림사(寶林寺)가 창건되어 불교 포교에 노력하였고, 1927년에는 용성선사를 중심으로 백운산에 ‘화과원’이 개척되어 불교의 자주와 혁신을 추구하였다. 해방 후에도 여러 사찰들이 중창되고, 서암정사를 비롯한 사찰들이 새롭게 창건되었다. 그 결과 2018년 기준, 함양군에는 조계종 소속을 비롯한 약 60곳의 사찰이 활동 중이며, 지역별로는 함양읍·마천면·휴천면·백전면에 집중되어 있다.
[기독교]
1. 천주교
16세기 말 혹은 17세기 초반에 한반도에 전래된 천주교는 유교의 제례·상례를 미신으로 부정하고, 평등을 주창하면서 점차 교세를 확장하였다. 그 결과 1791년 신해박해(정조 15)를 시작으로 천주교는 수차례의 탄압을 받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충청남도 연산[현재 논산시]의 몇몇 교인들이 함양군 백전면과 서하면으로 피난하여 집단거주하면서 천주교가 함양군에 처음으로 유입되었다. 이들은 인근 전라북도 장수에서 활동하던 최양업(도마)·리우빌(lieuville) 신부 등의 지도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지속하였다. 1883년에 대운암 공소와 터골 공소가 신앙의 공간으로 설치되었고, 교세가 확장되면서 능경 공소, 대맛 공소 등이 증설되었다. 특히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으로 인근 지역에서 300여 명의 교인들이 함양군으로 유입되면서 교세는 급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 4월, 대구교구에서는 함양군 교세의 확장에 발맞추어 함양본당[원교성당]을 설립하였다. 해방 후인 1965년에는 교세의 확장과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관할하고 있던 산청 지역을 분리하였다. 2009년 1월에는 안의선교성당을 개편하였다.
2018년 9월 기준, 함양군에는 2곳의 본당[함양성당과 안의선교성당]이 있고, 그 예하에 6곳의 공소가 있다. 이곳에는 2명의 주임신부가 상주하고 있으며, 함양성당에 2,537명, 안의선교성당에 511명의 신자가 활동 중이다.
2. 개신교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개신교 내부에서도 장로교·감리교·루터교 등의 다양한 분파가 출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19세기 중반에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함양군에는 19세기 말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배위량(裵緯良, Baird)[1862~1931]에 의해 처음 전파되었다. 1893년 9월, 배위량이 부산에서 ‘사근[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과 ‘함양읍’을 경유하여 서울로 갔다고 전하는데, 이것으로 함양군에 개신교가 처음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로 1905년 9월부터 심익순(沈翊舜, Smith)[1874~1932]은 함양군에서 왕성한 전도활동을 펼쳤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에 미국 북장로교가 부산·경남 지역에서 물러나고 호주 장로교가 대신하면서 함양군도 그들의 지도하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함양군에서 활동한 선교사로는 거열휴(巨烈休, Currel)[1871~1943], 맹호은(孟皓恩, MacRae)[1884~1973] 등이 있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던 김주관(金周寬)·오형선(吳亨善)·황보기(皇甫琪)·주남고(朱南皐)[일명 주남선] 등의 한국인 전도사들의 활동도 주목된다. 그들의 선교로 함양군에서는 사근교회[현 수동교회, 1907 혹은 1909]를 시작으로 안의교회[1907]·함양교회[1909]·개평교회[1919]·대남교회[1928]·상남교회[1930]·운곡교회[1931]·칠형정교회[1934]·봉전교회[1935] 등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함양군은 김종직과 정여창 이래 영남 유림의 본향(本鄕)이었고, 지리산 자락의 오지라는 자연환경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일제 강점기는 물론이고, 1970년대까지도 개신교의 교세는 미미한 편이었다.
2018년 9월 기준, 함양군에는 60여 곳의 교회[고신 21, 통합 20, 성결 4, 기감 4, 합동 4, 대신 2, 독립교회 2 등]가 산재해 있다.
[신종교]
함양군의 신종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인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에 주로 유입되었다. 신종교는 크게 토착적인 민족계열과 외래계열로 구분된다.
1. 민족계열의 신종교
민족계열의 신종교로는 단군성전(檀君聖殿), 성덕교(聖德敎), 증산도 등이 있다. 함양군에서 단군성전은 1953년에 지역 유림을 중심으로 건립이 추진되었고, 1959년에 함양재건학교 강당에 영정을 봉안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2018년 지금까지 별다른 교세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성덕교는 1952년 대구광역시에서 창립된 것으로, 함양군에서 교화는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1985년경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 ‘성덕도 함양교화원’이 설립되기는 하였지만 현재까지 교세는 미미한 편이다. 이 외에 증산도는 1911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보천교(普天敎)로 설립된 것으로, 함양군에서는 1988년에 처음으로 전교되었다. 2018년 기준, ‘증산도 함양용평도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수십 명의 신자들이 활동 중이다.
2. 외래계열의 신종교
외래계열의 신종교로는 불교계의 원불교, 한국SGI와 기독교계열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여호와 증인 등이 있다. 불교계열의 원불교는 1956년 전라북도 남원의 운봉교당을 통해서 전파되었고, 함양교당이 설치된 것이 시초이다. 그 후로 1963년부터 함양교당을 연원으로 지곡면에도 교당이 설치되었다. 2018년 기준, 원불교 경상남도교구 아래에 함양교당과 지곡교당 2곳이 있으며, 2명의 교무에 400여 명의 신자들이 활동 중이다. ‘한국SGI’도 불교계열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비록 함양군에 ‘함양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교세는 미약한 편이다.
기독교계열인 ‘함양가정교회’는 1954년에 창립된 통일교로 잘 알려져 있다. 함양군에는 1970년에 ‘반공’을 중시하며 선교된 것이 시초이다. 외국인 부인들 중심의 국제가정선교사회의 활동이 주목된다. ‘여호와 증인’도 기독교계열로 1964년 4월에 9명의 신도로 함양회중이 정식으로 설립되면서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선교활동으로 1995년에는 성원이 45명으로 조금 증가하였다.
함양군에서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토착신앙뿐만 아니라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외래종교들이 유입되면서 지역민들의 정서적 안정과 민심의 통일에 일정한 작용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