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1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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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正莊里 |
영어공식명칭 | Jeongja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정장리(正莊里)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남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장 마을과 국농소마을의 2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정장리는 정장 마을의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초 장원(莊園)을 두고 농소(農所)를 설치하여 나라에서 관리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장리의 정장마을은 평탄한 넓은 밭들이라는 뜻에서 ‘정장’이라 하였다. 정장마을에 속한 소래실마을은 마을 앞에 ‘소라설’이라는 파평윤씨의 묘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국농소 마을은 낙향 귀농한 곳이라 하여 국농소 또는 국노실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까지 거창읍의 남쪽 지역 천외면이었으며, 1914년 천외면과 동부면, 천내면을 합쳐서읍내면으로 하면서 이에 소속되었고 1937년 1월 15일에 거창면으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같은 해 7월 1일에 거창읍에 소속되었다.
정장리는 정장 마을과 국농소마을의 2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정장(正莊)[정쟁이] 마을은 영조 때 무신란이 진압된 후 거창유씨가 칡덩굴을 치고 들어와 터전을 잡았으며 이후 거창장씨와 합천이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국농소마을은 조선 성종의 넷째 아들 완원군의 5대손 승의랑 이유길이 은거한 곳으로 이유길의 아버지 대사헌 이위가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사하고 그 후손이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환경]
정장리는 거창읍의 남동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낮은 잔구성 산지로 이루어진 곳이다. 남쪽의 구릉성 산지를 경계로 거창군 월평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장리의 국농소마을 주변으로는 구릉지의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한 통일 신라 토성이 남아 있다.
[현황]
정장리는 2016년 5월 말 현재 342세대에 남자 371명과 여자 319명으로 총 690명이 거주하고 있다.
정장리의 동부 지역에 종단하듯 남북으로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서부 지역에는 거창읍 중심지와 연결하는 지방도 1084호선이 종단하듯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정장리의 정장 마을은 북쪽에, 국농소마을은 동쪽에 들어서 있으며, 특히 국농소마을은 광주대구고속도로 동쪽편 동북단에 자리하고 있다. 광주대구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동쪽 지역에는 거창 정장 농공단지가, 서쪽 지역에는 거창 서울우유 농공단지가 입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국교통안전공단 거창자동차검사소와 청과물 처리장이 고속 도로와 인접하여 입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