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1236
한자 松亭里
영어공식명칭 Songj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송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37년 7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송정리 개설
성격 법정리
가구수 541세대
인구[남/여] 1,193명[남자 588명, 여자 605명]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의 서부에 자리한 송정리(松亭里)는 송정, 운정, 마동, 절부리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송정리는 송정(松亭) 마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송정 마을은 옛날 영천교[거창교] 주변에 큰 반송(盤松)이 있어 ‘솔뚜백이’라 부르던 것이 ‘솔지이’로 변하고 이후 ‘송정’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송정리운정(雲亭) 마을은 마을 앞들에 구릉논[저습답(低濕畓)]이 많아 ‘구릉지이’라 불렀고 이후 ‘구름지이’로 바뀌었다는 설과 아침 안개 속에 싸인 마을의 모습이 구름 속의 정자처럼 보인다고 하여 ‘구름지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송정리의 마동은 남서쪽의 뒷산이 말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말의 뒷꿈치 부분에 마을이 자리하였다고 하여 마동 또는 마적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송정리절부(節婦) 마을은 고려 1380년(우왕 6) 홍무의 난 당시 왜구가 침입하였을 때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탐진 최씨의 숭고한 뜻을 기려 나라에서 마을 이름을 ‘절부리’라고 하사하였다고 한다. 절부리를 중국식 발음으로 제불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송정리가 속하는 거창읍은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으로 1914년 읍내면이 되었고 1937년 1월 15일에 거창면이 되었으며 같은 해 7월 1일에 거창읍으로 개칭되어 거창읍 송정리가 되었다.

송정리의 송정 마을은 조선 인조 때 김해 김씨 순룡이 능금에서 이거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송정리운정 마을경주 최씨 중시조인 승지공 최치룡이 경기도 양주에서 거창으로 내려와 거창읍 상림리 미륵댕이 부근에서 생활하다가 승지공의 증손 최계달이 운정 마을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송정리의 마동은 운정 마을 남동쪽에 위치한 곳이다.

송정리절부 마을은 일제 강점 이후 마을 이름을 ‘덕독’으로 강제 개명하여 사용하다가 1995년 8월 18일 광복 50주년 기념 ‘고유 지명 되찾기 사업’으로 마을 이름을 ‘절부’로 복원하여 개정하였다.

[자연환경]

송정리망덕산을 분수령으로 동쪽 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산사면 아래 부분은 하천의 침식으로 작은 계곡들이 동쪽 방향으로 여러 개가 나란히 발달해 있다. 이 형상이 마치 말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송정리의 북쪽 경계부에 위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동쪽 경계부에는 웅곡천과 위천이 합류하며 형성한 범람원이 발달해 있어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송정리는 서쪽으로 높은 산지와 산사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은 낮은 평지가 발달해 있어 서고동저의 지형을 보이고 있다.

[현황]

송정리는 2016년 5월 말 현재 541세대에 남자 588명, 여자 605명으로 총 1,193명이 거주하고 있다.

송정리의 북동부이면서 거창 위천의 남쪽 지역이 ‘거창 송정 도시 개발 구역’으로 설정되어 거창읍의 시가지가 아림교 남쪽으로 확대 발전하고 있다. 송정리의 주요 시설로는 한국 승강기 대학교, 거창 군립 노인 요양 병원운정 마을 서쪽에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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