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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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 - 住民 虐殺 事件 |
영어공식명칭 | Civilian Massacre in Geochang Gimyong Maeu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양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은정 |
발단 시기/일시 | 1950년 6월 25일 - 한국 전쟁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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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기/일시 | 1950년 7월 27일 - 북한 인민군 거창 점령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8월 1일 - 김용 마을 주민 학살 사건 발생 |
발생|시작 장소 | 김용 마을 뒷산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양평리 |
성격 | 학살 |
관련 인물/단체 | 미군|최명금 |
[정의]
한국 전쟁 시기 1950년 8월 1일 경상남도 거창군의 김용 마을 주민들이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희생된 사건.
[개설]
1950년 7월 말경 경상남도 거창 주변 지역은 북한 인민군의 점령지였으며, 미군이 대규모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8월 1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양평리 김용 마을 최명금 일가족이 전란을 피해 뒷산으로 숨었다가 두 차례에 걸친 미군 전투기의 기총 사격으로 일가족 6명이 사망했다. 이때 거창 읍내에서 피난 온 사람들을 포함하여 약 20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배경]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두 달만인 7월 27일 거창이 점령되었다. 이에 거창 인근 지역에 대한 미군 전투기의 대규모 폭격이 이루어졌다. 이 와중에 민간인 학살 피해가 일어났다.
[경과]
김용 마을은 35~40호 규모의 자연 부락으로 주민들 대부분은 마을에서 약 2㎞ 떨어진 뒷산과 계곡으로 피난을 갔다. 1950년 8월 1일 마을 뒷산은 나무가 별로 없어서 숨을 곳이 마땅하지 않아 피난민들이 산비탈에 앉아 있었고, 미군 정찰기가 지나가고 5분쯤 뒤 폭격기 두 대가 마을 뒷산에 기총 사격을 시작했다. 두 차례에 걸친 기총 사격으로 김용 마을 최명금 일가족 6명이 사망했다. 이때 거창읍에서 피난 온 사람들을 포함하여 약 20명이 희생되었다. 기총 사격 당시 피난민들은 흰 수건을 흔들면서 민간인임을 표시했으나, 기총 사격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결과]
미군 폭격기 희생자 중에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김용 마을 최명금 일가족 6명으로, 최명금[남 40세], 정수문[여, 67세], 김기선[여 32세], 최옥이[여 16세], 최영식[남 11세], 최경득[여 5세]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사업에서 나온 증언에 따르면, 김용 마을 뒷산에 숨어 있다 변을 당한 이는 최명금 일가족 6명을 포함해 약 주민 20명이다.
[의의와 평가]
한국 전쟁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지만 특히 민간인의 희생이 컸다. 김용 마을 주민 학살 사건은 아군인 미군의 전투기에 의한 학살로 더욱 가슴 아픈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