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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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洙 |
영어음역 | Choe 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도식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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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최여남(崔汝南) |
어머니 | 정선전씨 전무(全務)의 딸 |
성별 | 남 |
생년 | 1443년(세종 25) |
몰년 | 1474년(성종 5) |
본관 | 강릉 |
제향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2920-16[교동 238-3번지] 향현사 |
대표관직 | 현감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강릉. 강릉 12향현 중 한 사람이다.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敎授) 최여남(崔汝南)이고, 어머니는 정선전씨 생원 전무(全務)의 딸이다.
[생애]
1468년(세조 14)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1472년(성종 3)에 진잠현감(鎭岑縣監)으로 부임하였으나 병을 얻어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1466년(세조 12) 세조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영동 일대를 순시할 때 오대산 어림대(御臨臺)에서 별시를 개최하였다. 이때 세조는 숭불문(崇佛門)과 벽불문(闢佛門)을 설치하고 무사(武士)로 하여금 벽불문을 지키게 하였다. 모두 숭불문을 통과하였는데, 최수 혼자 벽불문을 통과하려 하자 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가 철추로 내리치려 하였다. 왕이 최수의 기개에 감복하여 의사(義士)라고 칭하였다.
1470년(성종1)에는 성변(星變)으로 인한 왕의 구언(求言)에 상소하기를, “…신이 생각컨대 병자년(1456)의 원혼(怨魂, 단종 복위운동으로 죽은 사육신 등의 혼)들이 그들의 해골이 제대로 거두어지지 않고 있음을 원통하게 여기고 의지할 곳 없이 떠다니면서 요란을 떠는 것 같습니다. 바라옵건대 임금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큰 은혜를 내리십시오. 그리고 강원도 감사로 하여금 노산군(魯山君)[단종]의 해골을 수습하여 다시 장사를 지내게 하고, 영월군수로 하여금 해마다 제사를 올리게 하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것입니다.”라 하면서 단종의 복위를 간하였다.
또한 승려의 횡포에 대해 상소하기를 “강릉 염양사(艶陽寺)의 중은 영남에서 면포(綿布)를 사다가 비싼 값으로 백성에게 강매(强賣)하였는데, 백성이 이에 불응하면 결부(結卜)의 수를 헤아려 강제로 나누어 주었다가 추수 때가 되면 성화같이 값 독촉을 하여 백성이 죽을 곤욕을 당하고 있으니 이를 시정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상소에 대한 왕의 비답(批答)은 없었다.
[묘소]
강릉부 남이리면[지금의 성덕면] 송현리(松峴里)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82년(숙종 8)이래 현재 강원도 강릉시 교동 238-8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향현사에 제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