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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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忠祠 |
영어음역 | Jeonchung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저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호민 |
[정의]
고려말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영정(影幀)을 봉안한 사당.
[개설]
사당에 봉안된 영정은 1969년 용인군 모현면 능원리 종가 인근에 있던 충렬서원(忠烈書院)에 봉향 중인 진영을 서울대학교 서세옥(徐細鈺) 교수가 모사한 것이다. 개성 숭양서원에서 모사한 영정은 퇴색되어 환봉(還封)하였다.
[건립경위]
1934년 후손 정기용(鄭起鎔)이 개성 숭양서원(崧陽書院)에서 진영(眞影)을 모사(模寫)하여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큰골에 사우를 건립하고 30여 년 간 사림과 함께 봉향 다례를 행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산간오지로 교통이 불편하여 사림의 왕래가 곤란하고, 또 병화(兵禍) 우려 지역이기에 이건이 불가피한 실정에 있었다. 1967년 강릉유도회장이던 후손 정주교(鄭冑敎)의 주선으로 사림 및 후손들과 협의 하에 1968년 강릉시장 김남형(金南亨)을 영당이건추진위원회(影堂移建推進委員會) 위원장으로 선정하고 사림과 후손들이 성금을 모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1969년 4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이 비서관 손석원(孫錫源)을 파견하여 봉안고축문(奉安告祝文)을 고하고 사당을 전충사(全忠祠)라 하였다.
[위치]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태인 전충사가 정면에 있다. 입구는 맞배지붕 형태의 삼문이며 담장이 둘러져 있다.
[금석문]
전충사 솟을대문에 ‘상도문(尙道門)’이란 현판과 전충사 전면 4개 기둥에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현황]
강릉 지역 유림과 후손들의 협의에 의하여 사우가 운영되고, 재정은 영일정씨강릉지구종친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제향일(祭享日)은 매년 음력 4월 상정일(上丁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