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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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臨瀛館三門 |
영어음역 | Gangneung Gaeksamun |
영어의미역 | Gaeksamun Gate of Gangneung |
이칭/별칭 | 임영관,강릉 객사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 58-1번지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재국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2년 12월 20일 - 강릉 임영관 삼문, 국보 제51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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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강릉 임영관 삼문, 국보로 재지정 |
성격 | 관영건축 |
양식 | 주심포식(柱心包式) |
건립시기/일시 | 936년(고려 태조 19) |
관련인물 | 공민왕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 58-1번지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번호 | 국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10월 4일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고려 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
[개설]
객사란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 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글이라고 한다.
[건립경위]
고려 태조 병신년(936년) 강릉부 객사로 임영관을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의 건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건립되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객사의 외문으로써(1929년 2월)일제시대에 공립보통학교로 사용 중 운동장 확장 공사로 인하여 본채의 건축물은 헐리게 되고 현재의 문루만 남게 되었다.
[위치]
강릉 임영관 삼문은 강릉 초입 낮은 구릉에 위치하는데 주위 환경과 어우러져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건축의 배치는 외문, 중문으로 구성되며 깊이를 깊게 하여 본전을 중심으로 양 옆에 건축물을 두면서 대칭적으로 구성된다.
본전은 큰 대청마루가 중앙에 있어 이곳에서 전패를 모시고 의식을 치룰 수 있게 천정이 높고 넓게 건축되며 그 양편에는 숙박을 위한 온돌방을 두고 있다. 전패를 모시는 중앙 건물은 가장 높게 건축되며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처리하며 양 옆의 건축물은 본전보다 낮으면서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였다.
객사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단일 스팬 5량 집 맞배지붕이며 지붕은 약간 솟음을 하고 있다. 정면 3칸에 커다란 판장문을 달고 있으며 막돌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중앙 대문짝을 닫게 된 기둥은 방주로 처리하였다.
객사문 평주는 강한 배흘림을 가지고 있고 포작은 2출목 주심포 형식이며 외목도리와 주심까지의 깊이는 1.75척으로 짧게 구성되어 간결하면서 장중하다.
기둥 위는 창방으로 결구하고 첨차를 내어 주두 위의 살미첨차를 받치고 있다.
주두의 굽면이 곡면이고 굽받침이 있으며 헛첨차의 밑면은 쌍S자로 되어있고 그 단부는 사면으로 끊겨 있다. 우미량은 굴곡이 심하지 않고 평보보다 약간 굽게 하였고 7량으로서 대들보를 앞뒤 평주위에 걸고 중앙에 같은 높이의 방주로 받치고 있다. 종보는 구름무늬로 조각 된 동자기둥과 이 위에 우미량 다시 소로에 위해 받치고 있으며 종보의 중앙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현황]
강릉 임영관 삼문은 1962년 12월 20일에 강릉 객사문이라는 명칭으로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10월 강릉 임영관 삼문으로 지정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