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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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像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집필자 | 강호선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사찰에 보관중인 부처, 보살, 신중 등을 돌이나 나무에 새기거나 흙으로 빚거나 혹은 철, 동 등으로 주조하여 만든 다양한 불교 조각.
[개설]
인도에서는 기원전 5세기 불교의 개조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불상을 조성하지 않는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를 거쳐 서기 1세기 무렵 간다라 지역과 마투라 지역에서 각각 불상이 등장하였다. 이 두 지역의 불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도기를 거쳐 굽타시대인 4~5세기 두 양식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불상양식이 탄생하게 된다. 이 굽타불상은 고전양식의 규범이 되어 중국과 한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실크로드 지역을 거쳐 1세기 무렵 중국에 전래되었는데, 불교의 전래에는 경전 뿐만 아니라 불상과 보살상 등 불교의 신상들의 전래도 수반하였다.
4세기 후반 삼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삼국에서도 불상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본격적으로 불상을 조성한 것은 6세기부터로 보인다.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불상은 한국 불교 문화의 전개와 함께 변화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도상이 들어오기도 하고 그것이 한국적으로 변용되어 발전하기도 했다. 새로운 불, 보살상, 신중상의 등장은 당시 불교교리와 신앙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불교문화 이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편 불상을 조성하는 재료에는 제한이 없어 돌, 흙, 금속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한국 불교에서는 화강암과 나무에 조각한 석불이나 목조불, 혹은 흙으로 빚은 소조불이나 동이나 철로 주물한 뒤 표면에 금도금을 한 금동불이나 철불이 가장 많이 조성되었다.
[강남구 소재 불상 현황]
현재 강남구에는 많은 사찰과 법당, 포교당 등이 들어서면서 현대에 만든 불상은 일일이 그 현황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문화재로서 의미가 있는 불상은 대부분 봉은사(奉恩寺)의 각 전각에 분산되어 있어 강남구 소재 불상은 봉은사 소장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봉은사 소재 불상은 모두 조선 후기 조성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봉은사 소장이 아닌 불상으로는 개인소장의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국보 제173호]과 일원동 불국사(佛國寺) 약사보전에 봉안된 석불좌상[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6호]이 있다. 청자 나한좌상은 1950년대 강화도에서 발견된 것으로 13세기 전반 전라북도 부안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자로 조성했으나 철화와 퇴화기법 등을 사용한 점에서 드문 사례이다. 일원동 불국사 석불좌상은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불상인데 인근 마을의 농부가 땅속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신체의 비례가 어색하고 조각이 투박하기는 하나 고려 시대 불상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어 고려 후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후기 석불조각의 지방양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개인소장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과 불국사 석불좌상은 현재까지 알려진 강남구 소재 불상 가운데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것인데, 특히 불국사 석불좌상은 강남구에서 조성된 불상 중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봉은사의 불상은 사천왕상, 나한상, 삼존불 등이 대표적이며,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봉은사의 불상은 모두 나무에 조각한 뒤 채색을 하거나 도금을 한 목조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불교조각으로 목조와 소조상이 가장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중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것은 대웅전에 보안된 석가모니불좌상, 아미타불좌상, 약사불좌상의 삼세불(三世佛)로 모두 복장기가 남아 있어 삼세불상의 조성과 이후 보수 연혁을 알 수 있다. 이 삼세불상은 1651년(효종 2) 7월 19일 봉은사 대웅전에 봉안되었고, 1765년 삼세불에 대한 개금불사가 있었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대표적인 유파인 무염파(無染派)에 속하는 조각승 승일(勝一)이 수화사로서 조성한 불상이라는 점에서 17세기 불교조각 이해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현세의 석가모니불,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 아미타불, 동방 약사정토의 주재자 약사불의 삼세불이나 법신(法身) 비로나자불, 보신(報身) 노사나불,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의 삼신불(三身佛)을 주불전에 봉안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봉은사 대웅전의 삼세불은 이러한 점에서도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성을 잘 보여준다.
영산전에 봉안된 목조삼존불상은 석가모니불좌상, 가섭존자입상, 아난존자입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존불을 조성할 때 주존불의 협시로 보살을 양립하는 것과 달리 가섭과 아난존자를 세웠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산전 후불탱 화기를 통해 1895년 개금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삼존불은 18세기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895년 삼존불을 개금할 때 목조 십육나한상을 조성하여 영산전에 봉안했음이 확인된다. 이 나한상은 16개 가운데 4개를 잃어버리기는 했으나 조선 후기에서 한말 조성된 나한상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물이다. 마지막으로 천왕문에 봉안되었던 사천왕상은 상을 보수하던 중 그 안에서 발원문과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1746년 조성되었다는 점과 18세기 당시 여러 사찰의 불사에 참여한 화사(畵師)들이 이 상을 조성했음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강남구 소재 불상의 대부분은 봉은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봉은사 불상은 모두 17세기 이후 조성된 불상인데 병자호란 때 봉은사가 완전히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은사의 주요 불상들은 대개 복장기나 화기를 통해 조성 및 수리와 관련된 내력이 분명하여 조선 후기 불교조각 이해에 중요한 유물이다. 조선 시대 왕실원찰이자 선종 수사찰(首寺刹)인 봉은사의 위상으로 인해 당대 최고의 화사나 조각승들이 봉은사 불상조성에 참여하였고, 17세기~근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꾸준히 불상이 조성됨으로써 조선 후기 시기별, 유파별 불상조성의 특징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