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2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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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忠壯公詩稿 |
영어음역 | Namchungjanggongsigo |
영어의미역 | Poetic Manuscripts of Lord Nam Chungj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석수 |
[정의]
1748년에 간행된 남연년의 시고(詩稿)를 모은 책.
[개설]
남연년(南延年)[1653~1728]은 감찰 남두명(南斗明)의 아들로, 1653년(효종 4)에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남달랐으며, 「소무전(蘇武傳)」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벼슬길에 올라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05년(숙종 31)에 황해도 병마우후(兵馬虞候)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겁내는 큰 곰을 한 발의 화살로 쏘아 잡은 일화가 있다. 1727년(영조 3) 충청도 청주 진영장겸토포사(鎭營將兼討捕使)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는데 남연년은 70세의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기력이 정정하였고 이인좌 앞에서도 늠름한 모습을 잃지 않고 한 치의 굽힘도 없이 떳떳하게 무장의 자리를 지켰다.
남연년의 순국 소식을 들은 영조는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청주 표충사에 제향하도록 하였다. 청주의 표충사는 조선 말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있었을 때도 훼철하지 않고 보존되었다. 1979년 남연년의 고향인 원남면 상노리에 충장공의 충신정문이 중건되어, 자신의 목숨보다 대의를 위해 충성을 다한 충장공의 뜻을 지금까지 잇고 있다.
[구성/내용]
홍계희(洪啓禧)[1703~1771]가 편집하여 1748년(영조 24)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민우수(閔遇洙)[1694~1756]의 서문과 권말에 홍계희의 발문이 있다. 100수의 시가 실려 있으며, 부록에 홍계희가 어명을 받아 지은 치제문(致祭文)과 황경원(黃景源)[1709~1787]이 지은 행장(行狀) 그리고 이재(李縡)[1680~1746]가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을 비롯하여 이관명(李觀命)[1661~1733], 조현명(趙顯命)[1690~1752] 등이 지은 만사(輓詞) 14수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남연년은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있어 부당함을 보면 의분을 느끼고 같이 슬퍼하였다. 문집에 실려 있는 작품들에는 이러한 남연년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무장의 기질대로 격렬하고 장엄하며, 나라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는 시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