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2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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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間信仰 |
영어의미역 | Folk Beliefs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남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의 민간에서 오래전부터 믿어 온 주술적인 신앙 체계.
[개설]
민간신앙은 공동체의 일상 생활 층위에서 생활하는 소위 서민층에 그 기층을 두고 있으며, 지역적인 범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지역적인 색채가 강하다. 또한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경험의 반복에 따른 판단에 그 신앙 구조의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민간신앙은 음성군 지역에서 먼저 집안에 성주신·토지신·제석신·업왕신·수문신·조왕신·측신·조상·삼신·용단지·철륭신을 믿는 가신 신앙이 있다. 그리고 산신제·서낭제, 마을의 수호신으로 동네 입구나 길가에 세운 사람 모양의 형상에다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하는 장승제는 원남면 마송리의 오미와 삼성면 양덕리의 미륵 장승제, 선돌 등과 같은 마을 신앙이 있다. 또 독경을 암송하는 앉은굿 형태의 무속 신앙, 나무나 바위, 산을 믿는 자연물 신앙, 묘나 집터에 길과 흉이 존재한다는 풍수 신앙, 세세풍속과 관련된 예조점복, 주부(呪符), 금기 등을 볼 수 있다.
민간신앙은 실제로 신성을 주축으로 인간의 소망을 기원하되 그 신앙 행위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종교적 지도자나 체계적인 조직력이 없다. 따라서 그대로 자연 속에 묻혀서 민간인들의 생활을 통하여 면면히 전승되고 있다. 음성군 지역의 민간신앙은 오늘날에도 간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급격한 산업 사회로의 전환과 농촌 사회의 기계화, 고령화, 도시화 등과 같은 환경 변화는 민간신앙의 축소 내지는 전승 중단의 사태까지도 초래하고 있다.
[현황]
음성에서의 민간신앙은 아직도 그 명맥이 면면이 이어내려오고 있으며 마을별로 집단 신앙의 성격의 민간신앙도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전해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원남면 마송리에 장승제가 아직도 이어져오고 있다. 수호제(守護祭)·동신제·동제·동고사라고 부르는 마을 수호신에 대한 제를 1930년대만 해도 음성군 내 54%가 지냈다.
현재는 대표적으로 음성읍 동음리 창동(倉洞)에서 행해지고 있다. 또한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도 많은데 생극면 병암리(屛岩里), 음성읍 평곡리(平谷里), 음성읍 사정리 용제동, 금왕읍 용계리 오룡동, 대소면 오산리, 음성읍 감우리, 대소면 내산리 등에서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그 밖에 서낭제·수신제·보제·미륵제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주로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에 그 전통이 이어오고 있는 형편이다.
[산신제]
산신제는 주로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나 나무 등에, 또는 산제당을 지어 놓고 매년 정초부터 정월보름 사이에 길일을 택하여 한밤중에 제사를 지낸다. 음성군에는 이런 산제당이 많았는데 지금은 남아 있는 곳이 몇 곳에 불과하다. 산신제의 행하는 방식이나 순서 등은 산신제의 형태는 마을마다 큰 차이가 없다. 병암리 산신제를 예를 들면, 제관은 2명 내지는 3명으로 그 해에 생기와 복덕이 있는 사람으로 골라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지내고 있다.
제관으로 뽑힌 사람은 최소 1주일 이상 금기를 지키고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다. 제물의 조리는 제관의 집 또는 부정이 없는 집에서 하였으며 제반은 산제당에서 지었는데 이를 새옹메라고 부른다. 병암리에서는 돼지를 잡아 산제당까지 가지고 올라가 제물로 바친다.
제례를 행하는 순서는 재배(再拜)·헌작(獻酌)·초아종(初·亞·終)헌례·재배(再拜)·독축(讀祝)·소지(燒紙)·재배(再拜)의 순이며, 소지는 대동소지(大同燒紙)·제주소지(祭主燒紙)·호별소지(戶別燒紙) 순으로 하는데 부정 있는 집은 제외하는 것이 상례이다.
산제당에서 제를 올리는 시간에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산제당을 바라보며 절을 한다. 이것을 맞이시루라고 하는데 현재는 거의 하지 않고 제관으로 올라오는 집과 개인적으로 하는 집만 하고 있다. 산신제가 끝나면 돼지를 다시 가지고 마을로 돌아와 다음날 분육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마을회관에서 잔치(파제)를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