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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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址 |
영어의미역 | Temple Site |
이칭/별칭 | 절터,폐사지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옛 절 터.
[관련기록]
음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지(寺址)는 상당수가 있으나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서가섭사 상봉악사 구재가섭산(西迦葉寺 上鳳岳寺 俱在迦葉山)”이라 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확인되는 서가섭사지 곧 응진암지(應眞庵址)와 상봉악사지(上鳳岳寺址) 등이 확인된다.
1632년에 만들어진 『호서승람(湖西勝覽)』에는 가섭사·성주사와 함께 대사(大寺)·곶사(串寺)·소우개사(小牛介寺)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대사는 삼성면 대사리에 있는 대사리 사지로 추정되나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기록된 곶사와 소우개사의 위치는 추정하기가 어렵다. 한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서가섭사와 함께 성주사(聖主寺)만이 기록되어 있고, 1910년~1937년 사이에 편찬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응진암·상봉악사·성주사만이 존속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읍면별 현황]
2002년에 조사된 『문화유적 분포지도 -음성군-』에는 문헌에 나오는 사찰의 폐사지 외에도 상당수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음성군 음성읍에는 읍내리의 읍내리 사지(邑內里 寺址), 평곡리의 평곡리 사지(平谷里 寺址), 용산리(龍山里)의 상봉악사지(上鳳岳寺址)와 응진암지(應眞庵址), 사정리의 사정리 사지(沙丁里 寺址), 감우리(甘雨里)의 성주사지(聖住寺址)가 있다.
음성군 금왕읍(金旺邑)에는 무극리의 무극리 사지(無極里 寺址)와 탑골 사지(塔谷 寺址), 금석리의 금석리 사지(金石里 寺址), 유촌리의 유촌리 사지(柳村里 寺址), 구계리의 구계리 사지(九溪里 寺址), 소이면(蘇伊面) 후미리의 후미리 사지(厚美里 寺址), 중동리의 중동리 사지(中洞里 寺址), 갑산리의 갑산리 사지(甲山里 寺址)가 있다.
음성군 원남면(遠南面)에는 보룡리의 보룡리 사지(普龍里 寺址), 덕정리의 덕정리 사지(德亭里 寺址)가 있고, 삼성면(三成面)에는 용성리(龍城里)의 백운사지(白雲寺址), 대사리의 대사리 사지(大寺里 寺址)가 있으며, 감곡면(甘谷面) 사곡리(沙谷里)에 김생암지(金生庵址)가 있다.
[사찰명이 전하는 사지]
이름이 전하는 사지로는 성주사지·상봉악사지·응진암지·백운사지·김생암지가 있다. 성주사지는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 보현산 남쪽 성주골에 있는 폐사지로 성주사의 창건 시기와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시기에 폐사되었다가 영조 때에 중창되었고 일제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상봉악사지는 음성읍 용산리 봉학골 기슭에 있는 폐사지로 상봉악사의 창건 시기와 유래는 알 수 없으며 조선시대 말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석탑 부재들만이 남아 있다. 응진암지는 용산리 가섭산 정상부 남쪽 기슭에 있는 폐사지이다. 응진암은 창건과 폐사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서가섭사라 불리었으며, 조선 후기에 폐사된 후 그 터에 응진암이 지어졌으나 1938년경 화재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석축 일부와 기와편만 남아 있다.
백운사지는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백운산 기슭 절터골에 있는 폐사지이다. 절의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암자와 부도가 임진왜란 때 없어지고 폐사가 되었다가 17세기에 중건되었다가 다시 이후 폐사되었다. 현재는 석축 일부와 초석, 기와조각, 백운사적비가 남아 있다. 김생암지는 감곡면 사곡리 원통산 기슭에 남아 있는 절터이다. 김생암은 창건 시기와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일제시대까지 존속했던 절로 정확한 폐사 시기는 알 수 없다.
[사찰명을 모르는 사지]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480번지에 있는 평곡리 사지에는 석불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절이 있었으나 그 이후의 상황은 알 수 없다. 절터는 현재 과수원이다. 읍내리 교동 사지(校洞 寺址)는 음성향교 앞 도로 건너편에 있는 폐사지로, 이곳에 있던 절은 고려 중엽에 세워져 임진왜란 시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후미리 사지는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 탑상골에 있는 절터로 석탑의 일부가 남아 있다. 출토되는 기와조각과 자기 조각으로 볼 때 이곳에 있던 절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말 내지 조선 초기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리 오상동의 중동리 사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고려 말에 폐사된 절타이다. 갑산리 사지에는 파손이 심한 오층석탑이 남아 있다. 절은 고려 말에 세워져 조선 초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탑골 현재의 보현암 주변에 있는 탑골 사지에는 연화대석과 각종 석탑 부재가 남아 있다. 금석리 사지는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 사당골에 있는 폐사지로 고려시대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다. 유촌리 절골 사지와 구계리 탑골 사지에서도 석재 일부와 기와조각만 발견될 뿐 내용은 알 수 없다.
음성군 원남면 덕정리에 있는 덕정리 사지는 현재 화엄사가 자리하고 곳으로 이 절터의 유래는 알 수 없다. 보룡리에 있는 보룡리 사지는 현재 밭으로 변해 있으며 고려시대 기와조각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삼성면 대사리 사운암에 대사리 사지가 있으나 내용은 알 수 없다.
[유적의 특징]
음성 지역의 여러 곳에 산재한 사지는 통일신라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사지로는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탑정이 뒤편의 수정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평곡리 사지와 소이면 중동리에 있는 중동리 사지가 있다.
1932년경 평곡리 사지에서는 ‘함통육년(咸通六年)’이라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865년(경문왕 5)에 해당한다. 중동리 사지도 사지 곳곳에서 확인되는 토기와 자기 그리고 기와조각을 통하여 통일신라시대에는 이미 사찰이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음성 지역 폐사지 가운데 가장 많은 시기를 차지하는 것은 고려시대에 세워져 활동하다가 폐사된 사지로, 읍내리 사지·평곡리 사지·무극리 사지·탑골 사지·보룡리 사지·유촌리 사지·후미리 사지 등이 있다. 이 시기의 사지에서는 예외 없이 고려시대의 불상과 불탑 등이 확인되고 있다.
그 외 다른 지역의 사지에서는 고려시대의 유물들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대부분 조선시대에 건립되어 일제강점기 전에 그 맥이 끊겼던 것으로 이해된다. 남아 있는 사지와 유물로 볼 때 음성 지역은 통일신라시대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 문화가 찬란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