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0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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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元澤 |
영어음역 | Jeong Wontaek |
이칭/별칭 | 구장(久長),지산(志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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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
성별 | 남 |
생년 | 1890년 9월 27일 |
몰년 | 1971년 11월 18일 |
대표경력 | 임시정부 의정원의원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90년 9월 27일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971년 11월 28일에 향년 82세로 별세하였다.
[활동사항]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하였으며,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에서 신규식(申圭植)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사절단의 자금을 간도 노령에서 14,000원을 인수하여 전달하고, 1919년 대한독립 의군부 조직에 참여하여 서무를 담당하였다.
길림 지역에서 재만동포선언서 2,400매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발송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독립 의군부 기밀사(機密事)로 상해에 출장하여 이동녕(李東寧) 등과 함께 길림의 상황을 보고하고, 국내에서 새로 온 청년들에게 폭탄제조법을 가르쳤다.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어 제2회 의정원 회의에 참석하고, 조소앙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 초안에 대해 토의하였다. 1919년 5월 초에 의정원의원 김덕진(金德鎭)과 국내로 밀파되어 서울 정두화(鄭斗和)에게 자금 조달을 원조 받으려 하였으나, 귀국 도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정원택은 징역 1년을 복역한 후 출소하여 『지산외유일지(志山外遊日誌)』를 집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0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77년에는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