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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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現代 |
영어의미역 | Present Ag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걸순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1945년 8·15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행정구역의 변천]
음성군은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충청북도 음성군이 된 이후 1906년 충주군의 금왕면·생극면·대소면·맹동면·삼성면·감곡면 등 6개 면이 편입되었다. 그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충주군 소이면의 일부가 편입되었고, 1956년 7월 8일 법률 제393호로 음성면이 음성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3월 12일에는 대통령령 제6542호로 중원군 신니면 광월리의 일부가 음성읍으로, 괴산군 불정면 문등리가 소이면으로, 생극면 도신리 일부가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대통령령 제6543호로 금왕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2개 읍, 7개 면, 114개 법정리와 321개의 행정리를 갖추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방공간의 사회경제]
1946년 12월 말 음성군의 호수는 12,711호였는데, 기타 103호를 제외한 사회경제 구조를 보면 자작농은 1,085호, 자작 겸 소작농은 2,401호, 소작 겸 자작농은 2,516호, 순 소작농은 무려 6,606호였다. 이 통계는 해방 공간 음성 지방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형편을 알려주는 것이다. 음성군 토지대장에 등록된 경지면적은 논이 7,353정보이고, 밭이 6,218정보였다.
토지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면적은 논이 64정보이고 밭이 690정보였는데, 이는 주로 개간지로서 추가 개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음성의 총 경작지는 14,261정보로서, 경작지 면적으로 보면 음성은 청원(29,417정보)과 충주(17,538정보), 괴산(16,526정보), 제천(14,651정보) 다음의 수준이다. 이 경작지에서 농사를 짓는 규모는 5정보 이상의 토지 경작자가 33호, 3정보 이상은 526호, 2정보 이상은 1,386호, 1정보 이상은 3,209호, 5반보 이상은 4,102호, 5반보 미만은 3,357호였다.
[6·25전쟁과 음성지구 전투]
1945년의 광복은 불행하게도 국토의 분단으로 연결되었고, 급기야 민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전쟁을 도발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자, 국군 제6사단 제7연대는 장호원에서 음성 방향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고 7월 4일 음성으로 이동하여 방어망을 구축하고 이튿날인 7월 5일 소여리 부근에서 북한군을 포위하여 섬멸하였다. 7월 6일과 7일, 국군은 다시 무극리에 있던 북한군을 공격하여 무극리를 탈환하고 생극면 병암리 지역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국군은 북한군의 반격을 받고 후퇴하여 부용산과 무극리 남쪽 백야리 351고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일전에 대비하였다. 7월 8일, 국군 제6사단 제7연대는 서부에서 이동하여 온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에 진지를 인계하고 원남면 보천리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북한군 15사단 병력이 남하하여 오자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기름고개(감우재)에서 적 1개 중대를 섬멸하고, 또다시 공격해 오는 2개 중대도 격퇴하였다. 7월 9일, 북한군 1개 대대 병력이 재차 공격해 오자 제11연대 제2대대는 감우재에서 적을 격퇴하였다. 음성지구 전투에서 국군이 거둔 전과는 북한군 사살 2,707명, 포로 170명, 각종 포 24문, 박격포 7문, 차량 65대, 장갑차 7대, 기관총 55정, 소총 1,187정, 무전기 4대 노획 등이다.
이에 반해 국군의 피해는 전사 71명, 부상 113명, 소총 22정 피탈에 불과하였으니 그 승전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음성지구 전투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이 거둔 최초의 승전으로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켜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군과 국민들에게 승리의 신념을 불어 넣어준 것이었다.
[혁신도시 건설]
음성군은 1980년대 이래 공단 조성 등으로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여 2008년 1월 현재 34,517세대에 88,439명이 거주하고 있다. 2007년 12월에 음성군은 진천군과 함께 혁신도시로 선정되어 새로운 도약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진천군 덕산면과 음성군 맹동면 일대 6,914㎢에 조성될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위한 진천·음성 혁신도시는 개발 방향을 교육·문화로 설정하고 계획인구를 42,000명(15,000호)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2012년 말까지 총 1조 5,595억 원이 투입되어 개발될 예정이다.
진천·음성 혁신도시로 이전이 확정된 공공기관은 정보통신기능군 3개 기관(한국통신정책연구원·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한국인터넷진흥원), 인력개발진흥군 5개 기관(한국교육개발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중앙공무원교육원·법무연수원·한국노동교육원), 기타 4개 기관(기술표준원·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한국가스안전공사·한국소비자보호원) 등 12개 기관이다.
이전 공공기관 부지 면적 등 혁신도시의 세부적 모습은 ‘이전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과 정부 재정 지원 계획에 따라 최종 확정될 것이나, 토지의 이용은 주택건설용지, 상업업무 용지, 혁신클러스터 용지, 공원과 녹지 용지, 학교 등 도시지원시설 용지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밖에 상·하수도 시설과 전력·열·도시가스공급 및 맹동국민임대산업단지 진입 도로의 신설과 군도 2번 확장과 신규 국도 21호선 접속부 입체화 계획 등 각종 인프라 구축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2012년 음성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