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91 |
---|---|
한자 | 李志傑 |
영어음역 | Yi Jigeol |
이칭/별칭 | 수부(秀夫),금호(琴湖),만은당(晩隱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문신 |
---|---|
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632년 |
몰년 | 1702년 |
본관 | 벽진(碧珍) |
대표관직 | 첨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부(秀夫), 호는 금호(琴湖)·만은당(晩隱堂). 병조참의 이상급(李尙伋)의 손자이고, 증좌승지 이련(李堜)의 아들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진사 권순열(權順悅)의 딸이다. 아들은 이세근(李世瑾), 이세진(李世璡)이다.
[활동사항]
이지걸은 3세에 고아가 되어 작은아버지 이인(李寅)에 의탁하여 자랐다. 1654년(효종 5) 진사가 되었으며, 1680년 음보로 벼슬에 나아가 의금부도사에 천거되어 동빙고별검이 되었다. 1681년 전설서별검, 통례원인의, 공조좌랑, 1683년 고산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687년 사복시주부, 흡곡현령, 내자주부, 사헌감찰, 공조좌랑을 거쳐 1688년 영덕현령이 되었다.
1689년 토호 세력과의 싸움 끝에 형벌을 남용한 죄를 지어 곤양으로 유배되었다가 1694년에 풀려났다. 1701년 아들 이세근의 시종 공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71세로 죽은 뒤 의정부좌찬성이 증직되었다.
[저술 및 작품]
한시에 능하여 1,500여 수를 남겼는데, 1712년 남구만, 최석정 등이 이지걸의 시를 모아 『금호유고(錦湖遺稿)』를 간행하였다. 최규서(崔奎瑞)가 발문에 이지걸의 시를 평하기를, “청아하고 담박함이 한유, 구양수보다 뛰어나다.”라고 극찬하였다.
[묘소]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 배미에 있다. 윤증(尹拯)이 묘갈을, 최석정이 묘지명을, 서종태가 부인 묘지명을, 아들 이세근이 행장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