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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836
한자 李箕洪
영어음역 Yi Gihong
이칭/별칭 기주(箕疇),여구(汝九),직재(直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종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41년연표보기
몰년 1708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대표관직 청풍부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의 증손이고, 부사과 이숙(李塾)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이기홍은 어려서부터 지혜가 뛰어나 수년 만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었고, 약관의 나이에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어 이지렴(李之濂)에게 수학했다. 1665년 송준길(宋浚吉)에게 학문의 요결을 배우고, 송시열(宋時烈)에게 『근사록(近思錄)』 등을 배웠다. 1687년에 효릉참봉이 되었으며,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송시열이 죄를 받고 제주도로 귀양 가자 동문 40명과 스승을 변론하다가 회령으로 귀양 가 5년 만인 1693년에 풀려났다.

1694년 시강원자의, 1695년 종부시주부, 1696년 서연관,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통천현감에 임명되어 마침내 부임하였다. 1698년 장령, 1700년 청풍부사로 부임하여 정사와 교육에 힘을 다하였다. 1702년 장령을 사직하고, 충청북도 연풍군(지금의 괴산군) 문산(文山)에 정착하여 수락당(壽樂堂)을 짓고, 권상하(權尙夏)와 경사를 강론하였다. 이후 여섯 번이나 집의에 임명되고, 장악원정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학문과 사상]

이기홍은 타고난 품성이 온화하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공무를 처리하는 데는 강직하였다. 사람을 대하는 데는 간격을 두지 않았고, 검소함을 숭상하고 화려함을 싫어했으며, 방을 항상 깨끗이 청소하고 하루 종일 앉아 학업에 정진하였다.

[묘소]

묘소가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율능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기홍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옥산사를 건립, 배향하였다. 2003년 4월 24일 음성군향토문화유적 제16호로 지정하고, 권상하가 묘갈명을, 정호가 묘지명을, 이희조가 행장을 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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