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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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漢模 |
영어공식명칭 | Jung Hanmo |
이칭/별칭 | 일모(一茅)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담 |
출생 시기/일시 | 1923년 10월 27일 - 정한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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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정한모 「귀향시편」 발표 |
수학 시기/일시 | 1955년 - 정한모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 정한모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멸입」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58년 - 정한모 동덕여자대학 교수 부임 |
수학 시기/일시 | 1959년 - 정한모 서울대학교 대학원 수료 |
활동 시기/일시 | 1966년 - 정한모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972년 - 정한모 제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78년 - 정한모 한국시인협회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84년 - 정한모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84년 - 정한모 제3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88년 - 정한모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퇴임 |
활동 시기/일시 | 1988년 - 정한모 문화공보부 장관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90년 - 정한모 대한민국 문화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1991년 2월 23일 - 정한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4월 19일 - 정한모 시비 건립 |
출생지 |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 |
학교|수학지 | 서울대학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
활동지 | 휘문고등학교 - 당시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서동 |
활동지 | 동덕여자대학교 -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23-1 |
활동지 | 서울대학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
성격 | 시인 |
성별 | 남성 |
본관 | 동래(東萊) |
대표 경력 | 한국시인협회장|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문화공보부 장관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의 현대 시인이자 국문학자.
[개설]
정한모(鄭漢模)[1923~1991]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긍정적 미래를 노래한 시인이자 문학 연구와 시론을 펼쳤던 국문학자이다.
[활동 사항]
정한모는 1923년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호는 일모(一茅)이다. 1945년 해방 직후 동인지 『백맥(白脈)』에 「귀향시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이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8년 첫번째 시집 『카오스의 사족(蛇足)』을 발간하였다. 195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고 두번째 시집 『여백을 위한 서정』을 발간하였다. 이후 『아가의 방』[1970], 『새벽』[1975], 『아가의 방 별사(別詞)』[1983], 『원점에 서서』[1989]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시인으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휘문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8년 동덕여자대학 교수로 부임하였고, 1966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1988년 퇴직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현대작가연구』[1959], 『한국현대시문학사』[1974] 등의 여러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며 문학 연구와 시론을 펼치기도 하였다.
197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취임하였고 1984년 제3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88년 문화공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문화공보부 장관 재임 중 월북 및 납북 문학 예술인들을 해금한 「납·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를 입안, 공포하여 한국 문단의 벽을 제거하는 데 공헌하였다. 1991년 2월 2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한모는 1972년 제4회 한국시인협회상, 1984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90년 대한민국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1997년 4월 19일 부여군 부여읍 구드래조각공원에 정한모 시비가 건립되었다. 정한모 시비에는 대표작 중 하나인 「새」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