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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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千世 |
영어공식명칭 | Jeong Cheon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효자.
[가계]
정천세(鄭千世)[1609~1619]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행충무위사과 정희영(鄭希永)이고, 할아버지는 사천현감을 지낸 정득열(鄭得說)이다. 아버지는 정택뢰(鄭澤雷)이고, 어머니는 정사경(鄭思敬)의 딸 동래 정씨(東萊 鄭氏)이다. 동생은 정만세(鄭晩世)·정계세(鄭繼世)·정수세(鄭壽世)이다.
[활동 사항]
정천세는 1609년(광해군 1) 부여에서 태어났다. 1615년 이이첨(李爾瞻) 일파가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를 주장하였고, 정천세의 아버지 정택뢰는 이이첨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려 남해로 유배되었다. 1619년 정택뢰가 유배지에서 사망하자 정천세는 아버지의 관 옆을 떠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채 십여 일을 통곡하며 슬퍼하다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806년 12월 10일, 예조의 요청으로 정천세의 효행과 정천세의 어머니 동래 정씨의 열행에 대하여 정문을 내리고 포상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정천세가 복호되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정조 대 이전에 복호의 포상을 받은 후 순조 대에 다시 정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현 부여읍 관북리에 정천세를 비롯하여 할아버지 정득열, 아버지 정택뢰, 어머니 동래 정씨 등 네 명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한 정려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