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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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漢老 |
영어공식명칭 | Jeon Hanr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순영 |
활동 시기/일시 | 1454년 - 전한로 복호되고 진무부위우군사용 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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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782년 - 전한로 봉호사에 향사 |
출생지 | 삼산리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삼산리 |
묘소|단소 | 전한로 묘소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담양(潭陽)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효자.
[가계]
전한로(田漢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아버지는 선무랑으로 이인도승(利仁道丞)을 지낸 전화(田和)이고, 어머니는 중랑장 황보린(皇甫璘)의 딸 영천 황보씨(永川 皇甫氏)이다. 부인은 숙부(叔父)인 승의부위 김경수(金敬修)의 딸 광주 김씨이다. 자식으로는 아들 3명이 있다.
[활동 사항]
전한로는 조선 전기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삼산리에서 태어났다. 『단종실록(端宗實錄)』에 따르면, 전한로는 어려서부터 스승에게 글을 배웠는데 스승이 배[梨] 하나를 주었더니 먹지 않아 까닭을 물으니 “어머니가 병환을 앓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하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배를 드렸다고 한다. 또,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3년 동안 무덤을 지키며 시묘살이를 하였고, 어머니가 사망하자 다시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전한로는 1454년(단종 2) 복호(復戶)[조선 시대에, 충신·효자·군인 등 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되고 진무부위우군사용(進武副尉右軍司勇)에 제수되었다.
[묘소]
전한로의 묘소는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전한로는 사망한 뒤 효자로 정려되고 1782년(정조 6)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에 있던 봉호사(蓬湖詞)에 향사되었다. 전한로의 효자 정려는 본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삼산리에 있었으나 홍수로 침수되어, 1987년에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의 전한로 묘소 아래로 이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