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346
한자 善山金氏
영어공식명칭 Seonsan-Kim Clan
이칭/별칭 일선김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선산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입향지 영해도호부 못골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김선궁(金宣弓)
입향 시조 김석(金碩)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김석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개설]

선산김씨(善山金氏)는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고 김석(金碩)[?~?]을 입향조로 하는 성씨로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세거하고 있다.

[연원]

선산김씨의 시조는 김선궁이다. 김선궁은 왕건(王建)이 일선군(一善郡)[선산의 옛 지명]에 이르러 모병할 때, 이에 응하여 종군하고 선궁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우고 정난보국공신(靖難輔國功臣)에 올랐으며, 벼슬이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門下侍中)에 이르렀다. 후손들이 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일선을 관향으로 삼았는데, 조선 태종 때에 일선군이 선산군으로 개칭되어 관향을 선산으로 바꾸었다. 영남 유학의 조종으로 칭송받는 김숙자(金叔滋)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부자가 선산김씨이다.

[입향 경위]

선산김씨로 옛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지역에 처음 입향한 인물은 김석이다. 일설에는 김석의 아들 김귀지가 입향조라는 주장도 있다. 김석은 영양남씨 남의록(南義綠)[1551~1620]의 사위[영양남씨 족보에는 김효남(金孝男)으로 기록]로 영해 못골[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 입향하였는데, 손자인 용암(龍巖) 김익중(金益重)[1678~1740] 대에 이르러 창수면 인량리에 정착하였다. 김익중은 무과에 급제한 무관으로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공신 1등(楊武原從功臣一等)에 올랐으며, 증직으로 병조참의를 제수받았다. 김익중의 아들 김선겸(金善兼), 손자 김종현(金宗鉉), 증손 김억(金億)도 무과에 급제하는 등 대대로 무관의 길을 걸었다.

[현황]

김익중의 후손들이 인량리에 세거하였으나 다른 마을에는 집성촌을 이루지 못하였다. 1992년에 간행된 『영덕군 향토사』에 의하면 인량리에는 총 150가구 중 20가구의 선산김씨가 거주하고 있었다. 인량1리와 2리가 분동된 2006년 말에는 인량1리 총 48가구 중 선산김씨는 12가구였다. 2015년 인구통계에 의하면 영덕군 관내에 선산김씨 132명, 일선김씨 4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인량리용암종택(仁良里龍巖宗宅)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병곡면 사천리 마을 입구에는 김익중을 추모하기 위해 1898년에 건립한 용암정(龍巖亭)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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