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601
한자 錦湖里平山申氏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ingle-Clan Village of Pyeongsan-Shin Clan in Geumho-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2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64가구[1992년 기준]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호리에 있는 평산 신씨 집성촌.

[개설]

평산신씨는 황해도 평산군을 관향으로 하고, 신숭겸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금호리의 평산신씨 입촌조의 정확한 신상명세와 입촌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희(申禧)[1426~1526]의 6세손인 신지립(申智立)[생몰연대 미상]의 후손들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인접한 금호3리에도 평산신씨가 다수 옮겨 살고 있다.

[마을입지]

강구항에서 오십천 동쪽 길을 따라 영덕읍으로 향하는 중간에 자리한 마을이다. 강구항 쪽이 금호1리, 영덕읍 쪽이 금호3리, 금호2리가 그 중간에 있다. 세 마을의 중간에 있다고 해서 ‘중간마을’ 또는 제일 규모가 크다고 해서 ‘큰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쪽은 고불봉에서 큰민봉을 거쳐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줄기가 뻗어 있고, 서쪽은 금호평의 넓은 들을 사이에 두고 오십천이 흐르고 있다. 남쪽은 금호1리를 거쳐 강구항으로 통하고, 북쪽은 금호3리를 거쳐 영덕읍 우곡리와 접하고 있다. 영덕읍으로 가는 옛 국도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강구항과 영덕 읍내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최근에 현대적 시설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명칭 유래]

오십천의 큰 물가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고 해서 ‘거무리’, ‘거무’, ‘검호(劍湖)’, ‘거동(巨洞)’, ‘금호(今湖)’라고 하다가 ‘금호(錦湖)’가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마을 중심에 큰 호수가 있다고 해서 ‘금호(錦湖)’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1890년대 후반에 발간된 『경상북도 영덕군읍지』에 ‘금리(今里)’라는 지명이 보이고, 1935년에 발간된 『영영승람』에 ‘상검(上劍)’이라는 기록이 나온다고 하니, 이 마을의 지명에 ‘금’이나 ‘검’을 사용한 것은 꽤 오래된 듯하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상금동, 하금동, 둔전, 소월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호동이라 명명하고 영덕면에 편입하였다가 1934년 강구면이 신설되면서 강구면에 편입하였다.

[형성 및 변천]

평산신씨가 금호동에 입촌한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전하는 바에는 14세기 말에 평산신씨가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나 확인하기 어렵다. 평산신씨 문중에서 작성한 파계도에 의하면, 금호리에는 영덕현 지역에 처음 정착한 신희의 6세손인 신지립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나, 신지립이 입촌조인지 아니면 그 후손 중 어떤 사람이 입촌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영덕읍 구미리와 화개리에 세거하던 평산신씨들이 17세기에 영덕현 관내의 여러 마을로 이거하는 것으로 보아 소월리에도 신지립의 후손이 17세기에 입촌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현황]

일제강점기인 1935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의 취락(후편)』에 의하면, 1930년에 영덕면 금호동1구[현재 금호2리로 추정]에 영해신씨[평산신씨] 50가구, 타성 15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1992년에 간행된 『영덕군 향토사』에는 금호2리 전체 78가구 중 평산신씨가 64가구를 점하고 있었다. 금호3리에도 47가구 중 26가구가 평산신씨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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