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015
한자 佛敎
영어공식명칭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병선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 전파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개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이다.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신라는 527년(법흥왕 14) 불교를 공인하였다. 영덕군은 637년(선덕여왕 6)에 유금사(有金寺)가 창건되면서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20여 종단에서 73개의 사찰을 운영하고 있고, 전통 사찰 2개소와 보물 2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사찰 현황]

영덕군의 불교 전래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지만,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은 유금사(有金寺), 청련사, 오현사[오현사지] 등이 있다. 이 중 창건년대가 전해지는 사찰은 637년(선덕여왕 6)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유금사이다. 창건 이후 유금사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 후기에 확인된다. 18세기 중엽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유금사는 영해부 북쪽 등운산(騰雲山)에 있다."고 하였다. 조선 전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기록에 없는 것으로 보아 한때 폐사되었다가 재창건한 사찰로 추정된다. 청련사와 오현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전해질 뿐이다. 영덕군의 고찰(古刹) 가운데 창건년대가 전해지는 사찰은 삼국시대의 유금사와 고려시대의 장육사(莊陸寺)이다.

통일신라시대 영덕군의 사찰 창건은 여타 지역과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통일신라시대의 국태민안과 선종의 유행으로 경주의 변방인 영덕에서도 묘장사[묘장사지 혹은 칠성사지], 하운사[하운사지], 경수사[경수사지 혹은 정수사지], 호남리사지 사찰이 창건되었다. 『영덕군지』에는 범흥사[범흥사지]와 옥천사[옥천사지]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는 불교 국가로서 국가적인 보호와 지원으로 사찰 창건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다. 나옹선사(懶翁禪師)[1320~1376]가 1355년(공민왕 4)에 창건한 장육사를 비롯하여 범흥사[범흥사지], 사자갑사[사자갑사지], 망곡사[망곡사지], 위장사[위장사지, 일명 우장사], 각리리사지, 괴시리사지[려말선초로 추정] 등의 사찰이 창건되었다. 장육사가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조선 초기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기록이 없다. 이후 기록이 없다가 18세기 중엽 『여지도서』에 "장육사는 영해부 서쪽 가을면산(加乙面山)에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때 폐사되었다가 조선 후기에 재창건한 사찰로 추정된다. 나머지 사찰들은 발굴 조사 및 설화에 의해 추정될 뿐이다.

조선시대는 억불(抑佛) 정책으로 사찰의 창건이 활발하지 못하였다. 국가적으로 새로운 사찰의 창건은 억제하고 다만 기존 사찰의 재창건은 허용하여 폐사찰을 복원하는 형태로 창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창건된 사찰은 용천사[용천사지], 옥천사[옥천사지], 쟁암리사지, 도계리사지 사찰 등이다.

일제강점기 영덕군에서는 친일 불교의 득세와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에도 불구하고 사찰 창건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존하는 사찰 가운데 선학사가 1930년경에 창건되었고, 관음사가 1932년[『영덕군지』에는 1939년], 해암사가 1935년, 덕흥사가 1938년[성보대장에는 1925년]에 각각 창건되었다. 사찰령으로 30개 본산제가 시행되면서 유금사와 장육사는 영천 은해사를 본사(本寺)로 말사(末寺)가 되었으며, 청련사는 경주 기림사를 본사로 말사가 되어 조선총독의 지배하에 예속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영덕 지역에 창건된 사찰은 22개로 창건 시기가 확인된 사찰이다. 그러나 창건 시기를 확인할 수 없는 사찰도 15개나 되는데, 흥덕사지, 망월암사지, 화수리사지, 상직리사지, 중화리사지, 덕산리사지, 봉정사지, 서왕사지, 원신암사지, 대진리사지, 개인사지, 용운사지, 안적암사지, 부곡리사지, 죽도산사지 등이다. 따라서 이 시기 영덕 지역에서 창건하여 불법(佛法)을 전파한 사찰은 모두 37개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사찰은 유금사장육사를 비롯하여 청련사, 선학사, 관음사, 해암사, 덕흥사 등 7개 사찰이다.

8.15광복 이후 영덕 지역에도 많은 사찰이 창건되었다. 영덕읍 금미사, 기원정사, 대원사, 동궁사, 명삼사, 법륜사, 불교수향원, 서남사, 성불사, 용휴사, 숭덕사, 연국사, 일도사, 해동사 등 14개, 강구면 광명사, 낙양사, 대원사, 대흥사, 무착사, 백연암, 봉천사, 영혜사, 원통사, 적멸사, 천명사 등 11개, 남정면 구어선원, 도덕사, 법선사, 보문사, 지장암 등 5개, 달산면 금황사, 만국사, 약천사, 옥천사, 용암사 등 5개, 병곡면 보운사, 보현사, 선해사, 칠보사, 협장사 등 5개, 영해면 대림사, 동화사, 무량사, 선재원, 백련암, 성용사, 연호사, 연화사, 용운사, 정원사, 홍련암 등 11개, 지품면 대흥사, 무량사, 영탑사, 용운사 등 4개, 창수면 대각사, 법륜사, 보리원, 상원사, 성불암 등 5개, 축산면 고경사, 문수정사, 약사암, 연화사, 영명사, 효심사 등 6개로 영덕군 지역에서는 총 66개 사찰이 창건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7개 사찰을 포함하면 2018년 기준 영덕군 지역에는 총 73개의 사찰이 불법을 전파하고 있다.

영덕군에는 73개의 사찰이 20여 개의 불교 종단에 소속되어 운영되고 있다. 영덕군 사찰의 종단을 보면 대한불교조계종, 대한불교법화종, 대한불교천태종, 한국불교태고종, 대한불교원효종, 한국불교대각종, 대한불교미륵종, 대한불교미타종, 세계불교삼보종, 대한불교총화종, 일월종, 대한불교일붕선교종, 대한불교미륵용화종, 조계선종, 한국전통불교조계종, 불교조계종, 대한불교삼보조계종, 생활불교조계종, 대한불교조계종, 대한불교연화조계종 등이며, 소속 사찰이 가장 많은 종단은 대한불교조계종이고 다음은 대한불교법화종이다. 다른 지역에 비하여 법화종단의 사찰이 많다.

[불교 문화재]

영덕군의 지정문화재는 보물 2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 등 모두 6점에 불과하며, 유금사, 장육사, 덕흥사 세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 영덕군의 지정문화재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적은 것으로 영덕 지역에는 고찰(古刹)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덕 지역 사찰 가운데 고찰이면서 전통 사찰은 유금사장육사뿐이다.

보물 2점은 유금사장육사에 각각 1점씩 보유하고 있다. 영덕 지역에서 가장 먼저 창건된 유금사에는 보물[제674호]인 ‘영덕 유금사 삼층석탑(盈德有金寺三層石塔)’이 있는데, 2021년 현재 해체·수리 중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영덕 유금사 삼층석탑은 원래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대웅전 뒤쪽으로 옮겼는데, 옮길 당시 탑에서 금동(金銅) 주악천인상(製樂天人像)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또 고려시대에 창건된 장육사에는 1395년(태조 4)에 조성되어 1407년(태종 7)에 개금(改金)한 것으로 확인된 보물[제993호]인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盈德莊陸寺乾漆觀音菩薩坐像)’이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다.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태조 이성계와 비(妃), 그리고 세자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것으로 처음에는 인근의 신기리[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있는 위장사 선당(葦長寺禪堂)에 봉안하였다가 위장사가 폐사(廢寺)되면서 장육사로 옮겨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점은 모두 장육사에 소장되어 있는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138호]인 ‘장육사 대웅전(莊陸寺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373호]인 「영덕 장육사 영산회상도(盈德藏陸寺靈山會上圖)」, 경상북도 유형문화재[374호]인 「영덕 장육사 지장보살도(盈德藏陸寺地藏菩薩圖)」이다. 조선 초기에 건립된 장육사 대웅전은 화려한 금단청, 빗천장의 주악비천상 등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지닌 건축물이다. 대웅전의 후불탱화인 「영덕 장육사 영산회상도」와 대웅전 우측 벽면의 「영덕 장육사 지장보살도」는 1764년(영조 40)에 조성된 탱화로 독특한 필법과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수준의 작품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은 덕흥사에 소장되어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제617호]인 「영덕 덕흥사 제석탱화(盈德德興寺帝釋幀畵)」덕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불화로 1828년(순조 28)에 수화사(首畫師) 금겸(錦謙)을 비롯하여 5명의 보조 화사(畫師)가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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