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024
한자 德興寺
영어공식명칭 Deokheung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산1길 48[남산리 126-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8년연표보기 - 덕흥사 건립
최초 건립지 덕흥사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산1길 48[남산리 126-1]
현 소재지 덕흥사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산1길 48[남산리 126-1]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박수경
전화 054-734-1180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남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 소속 사찰.

[개설]

덕흥사(德興寺)는 1938년에 박수경(朴壽鏡)이 창건한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末寺)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제617호]인 「영덕 덕흥사 제석탱화(盈德德興寺帝釋幀畵)」와 창건 당시의 탱화 4점을 소장하고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덕흥사는 1938년 조계종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덕흥사 성보대장에는 1925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전각은 대웅전, 삼성각·용왕전, 별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지어진 요사채가 있으며, 1990년대에 대웅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2005년경에 대웅전을 단청하고 같은 해에 삼성각을 신축하였다. 삼성각을 신축하고 대웅전의 주존불이었던 아미타불을 이봉(移奉)하고, 대웅전에 석가여래불을 주존불로 봉안(奉安)하였다. 아미타불의 후불탱으로는 창건 당시의 칠성탱을 봉안하였으며, 독성탱과 산신탱은 삼성각을 신축하면서 조성한 것이다.

[활동 사항]

덕흥사에서는 매년 12월 동짓날에 ‘팥죽 나누기’ 행사를 개최한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귀신을 쫒는 기능이 있다고 하여 집안의 여러 곳에 놓기도 하고,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진정한 팥죽 나누기 행사는 지나간 한 해를 참회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자비 정신을 실천하자는 의미이다. 그리고 매년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기탁하고 독거노인이나 요양원 등에 기부도 하고 있다. 또 2003년 8월에는 티베트의 승려 여덟 명이 덕흥사에서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덕흥사영덕세무서 뒤편 산 아래에 있다. 입구의 잘 정비된 길을 따라가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지붕 양식의 해탈문(解脫門)을 만난다. 해탈문은 2층 누각이며, 아래층 가운데로 출입을 하는데, 양측 벽면에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웅전이 있고, 좌우측에는 현대식 건물의 요사(寮舍)가 있으며, 대웅전 우측 뒤편에 삼성각이 있는 단순한 구조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지붕 양식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본존불로 하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夾侍)로 영산회상도를 후불탱화로 봉안(奉安)하였다. 그런데 협시불(脇侍佛)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대웅전 본존불 우측에는 석조지장보살좌상과 지장탱을 봉안하고, 좌측면 유리관 속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영덕 덕흥사 제석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탱과 지장탱은 삼성각의 칠성탱과 더불어 창건 당시에 조성된 불화이다. 삼성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기와지붕 양식으로 현판은 중앙이 아닌 한쪽에 치우쳐 걸려 있다. 삼성각 내부의 정면 중앙에 아미타불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뒤쪽 벽면에 후불탱화로 칠성탱이 봉안되어 있으며, 좌우로 독성탱과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좌상은 원래 대웅전의 주존불이었으나 삼성각을 신축하면서 옮겨졌다.

[관련 문화재]

덕흥사에는 2014년 1월 13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제617호]로 지정된 「영덕 덕흥사 제석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영덕 덕흥사 제석탱화」는 4폭으로 엮은 한 폭의 비단 바탕에 채색한 불화로 위태천(韋駄天)과 제석천(帝釋天)을 중심으로 주변에 9위의 권속(眷屬)으로 이루어졌다. 화기(畵記)에는 1828년(순조 28)에 수화사(首畫師) 금겸(錦謙)을 비롯한 다섯 명의 보조 화사가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습기로 인한 얼룩이 생기고, 후대에 부족한 부분을 그려 넣거나 덧칠을 한 흔적이 있어서 작품 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원 소장처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과 더불어 조선 후기 불화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그 밖에 덕흥사에는 1938년 사찰 창건과 함께 제작된 대웅전 본존불의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와 지장탱, 삼성각 보살좌상의 후불탱화인 칠성탱과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