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340
한자 人文-自然-調和無屹九曲布川九曲
영어공식명칭 Harmony between humanities and nature, Muheulgugok and Pocheongugok
이칭/별칭 대가천 계곡,포천 계곡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태수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금수면을 흐르는 대가천 계곡의 아홉 굽이와 가천면 가야산 아래에 있는 포천 계곡의 아홉 굽이.

[개설]

무흘구곡(無屹九曲)포천구곡(布川九曲)가야산과 주변 산지에 발달한 골짜기의 맑은 물과 기암괴석 등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성리학적 세계관에 의해 설정되었다. 무흘구곡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의의를 부여하고 경영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후학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무흘구곡은 단지봉과 형제봉 사이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에서 발원하여 성주군 금수면 영천리를 거쳐 무학리를 흘러가는 대가천 계곡의 절경 중 아홉 굽이인데, 굽이마다 시가 붙어 있고 그림이 있다.

포천구곡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2]가 경영한 구곡 문화로서, 가야산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를 흘러가는 화죽천의 포천 계곡에서 명소 아홉 군데를 골라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었다. 구곡 문화는 중국 송나라의 주자(朱子)가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설정하고 경영함으로써 시작된 성리학적 수양 문화이다. 조선 중기부터 많은 유학자들이 심성 수양과 학문 교류를 위해 주변의 산수 중에서 경치가 뛰어나고 의미가 있는 곳을 선택해 구곡을 정하고 즐겼으니, 뛰어난 주변 경치와 원숙한 학자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다. 이러한 구곡이 두 가지나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면서 뚜렷하게 전승되어 온 지역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성주가 명승이 다채로울 뿐 아니라 학문을 숭상하며 은일자적(隱逸自適)한 학자들이 많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무흘구곡의 설정과 경영]

무흘구곡은 제1곡 봉비암(鳳飛岩), 제2곡 한강대(寒岡臺), 제3곡 무학정(舞鶴亭)[배바위], 제4곡 입암(立巖)[선바위], 제5곡 사인암(捨印巖), 제6곡 옥류동(玉流洞), 제7곡 만월담(滿月潭), 제8곡 와룡암(臥龍巖), 제9곡 용추(龍湫)로 구성되어 있다. 하류에서 상류로 전개되는 방식은 주자의 무이구곡과 같은데, 9곡이 한꺼번에 설정되지는 않았다. 이름을 중심으로 살핀다면 9곡 중에는 정구 이전부터 이름이 있었던 것[봉비암, 무학정, 입암, 사인암]도 있고, 정구가 이름을 붙인 것[한강대, 만월담, 와룡암]도 있고, 후대 사람들이 명명한 것[옥류동, 용추]도 있다. 이로 보아 정구무흘구곡을 완성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흘구곡의 성립은 오로지 정구의 의지와 뜻이 있어 가능하였다. 정구대가천 상류에 1604년 무흘정사(武屹精舍)를 짓고 주변 경관에 대해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화운(和韻)[남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써서 답시를 지음]한 「앙화주부자무이구곡시운(仰和朱夫子武夷九曲詩韻)」 10수를 지어 노래했다. 이후 많은 후학들이 이 시를 무흘구곡 시로 수용하고 다투어 화운시를 지었다. 이는 무흘구곡이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최초 설계자인 정구의 도학 지향적 의도가 구곡 설정의 본질로 인식되었음을 말해준다.

무흘구곡이 구곡으로 정착되고 완성된 때는 17세기 말쯤으로 추정된다. 이때를 전후해서부터 많은 문인들이 무흘구곡 시를 짓고 바위에 각자(刻字)를 새기곤 했기 때문이다. 이에 참여한 이들은 여찬(呂燦)·여효사(呂孝思) 부자(父子), 최린(崔轔), 허목(許穆), 서사원(徐思遠), 이주(李嵀), 오장(吳長), 정동박(鄭東璞), 정교(鄭墧) 등이다. 구곡의 경영에는 구곡시의 창작과 함께 구곡도의 제작도 중요하다. 「무흘구곡도(武屹九曲圖)」는 18세기 인물인 정구의 후손 정동박이 제안하여 지역 화가인 김상진(金尙眞)이 1784년경에 그린 산수화이다. 이때 정구가 강학한 무흘정사도 중건되었다.

정구가 지은 「앙화주부자무이구곡시운」 중 4곡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사곡이라 백 척 바위에 구름이 걸려 있고[四曲雲收百尺巖]

바위 위의 화초들 바람에 살랑이네[巖頭花草帶風鬖]

그중 맑음이 이 같은 줄 누가 알까[箇中誰會淸如許]

하늘 가운데 개인 달은 그림자로 물에 떨어지네[霽月天心影落潭]

이 시는 구곡 중 ‘입암’을 노래한 시로서 1구의 ‘백척암(百尺巖)’이 입암이다. 입암의 경관을 묘사한 시인 듯하나 기실은 도학자의 득의(得意)한 흥취를 노래한 시이다. 제4곡 입암에 이른 시각은 아마 밤인 듯하니, 화자는 물가에서 비 갠 후 밝은 달빛 속의 입암과 주변 경관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고요함 속에 밤하늘의 구름이 우뚝 솟은 입암에 살짝 가려 있고 바위 꼭대기에 자란 풀들이 적당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정경이 속세와 욕심에서 격리된 공간으로 느껴지는데, 비 걷혀 밝은 달이 나오고 바람이 상쾌하게 불면서 입암 아래 대가천 물에 달이 비치고 있다. 정구는 이렇게 묘사된 시에서 무흘구곡에 대한 자긍심을 나타내고 천리(天理)가 실현된 자연 속에서 인욕(人慾)을 걷어내고 선한 본성을 함양하고자 하는 도학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구무흘구곡을 경영한 뜻이 확인되는 셈이다.

[포천구곡의 설정과 경영]

포천구곡은 제1곡 법림교(法林橋), 제2곡 조연(槽淵), 제3곡 구로동(九老洞), 4곡 포천(布川), 제5곡 당폭(堂瀑), 제6곡 사연(沙淵), 제7곡 석탑동(石塔洞), 제8곡 반선대(般旋臺), 제9곡 홍개동(洪開洞)으로 이루어진다. 이원조포천구곡을 설정한 때는 그가 긴 관료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서인데, 화죽천의 포천 계곡 상류에 만귀정(晩歸亭)을 지은 1851년경으로 추정된다. 만귀정의 자리는 두 차례나 옮긴 후에 정해졌으며, 이는 포천구곡의 설정과 관련이 있다. 만귀정이 자리 잡은 홍개동은 포천구곡의 마지막 굽이인 9곡이다.

이원조는 한말 성리학자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숙부로서 대사간, 공조판서를 지냈고 수많은 저술을 남긴 문신이자 학자이다. 소년등과한 후 60년이 넘게 관직에 있으면서도 자연 속에서 독서하고 수양하는 삶에 대한 소망을 늘 지니고 있었다. 경주부윤 재임 시 모함을 받자 치사(致仕)의 기회로 삼고는 곧 고향인 성주군 가천면으로 돌아온 후, 정구무흘구곡을 본받아 포천 계곡에 구곡을 설정한 것이다. 이는 정구의 종손인 정대영(鄭大永)과 무흘을 유람하고 시를 지은 등의 행적에서 확인된다. 이후 포천구곡의 경영은 오로지 이원조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이원조「포천구곡(布川九曲)」 시를 짓고 「포천구곡도(布川九曲圖)」까지 직접 그렸다.

「포천구곡」 중 마지막 9곡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구곡이라 홍개동이 확 트였는데[九曲洪開洞廓然]

오랜 세월 이 산천을 아껴서 숨겼네[百年慳秘此山川]

새 정자 자리 정해 이 몸 편안하니[新亭占得安身界]

인간 세상 별유천지이로다[不是人間別有天]

9곡은 포천구곡을 설정하고 모두 거닌 후 마무리하는 시이다. 1구에서 홍개동이 확연(廓然)하다고 함은 실제 쌍폭 아래의 소가 널찍한 것을 이른 것이면서, 동시에 9곡의 감상과 성찰을 통해 이원조가 도달하고자 하는 도학적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3구에서 새 정자는 만귀정을 가리키는데, 몸이 편안하다고 함은 사람이 찾지 않아 숨겨진 듯한 홍개동의 자연 속에서 천리에 순응하면서 살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4구의 ‘별유천지(別有天地)’는 경치가 뛰어나다는 의미뿐 아니라 이원조가 추구하고자 하는 소망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무흘구곡의 현장]

무흘구곡은 길이가 총 35.7㎞에 이르는데 경상북도 성주군과 김천시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원래는 모두 성주목에 속했으나 1905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증산면이 김천에 속하게 된 것이다. 하류 쪽인 성주군 수륜면에 1~2곡이, 금수면에 3~4곡이 위치하고 상류 쪽인 김천시 증산면에 5~9곡이 있다. 간혹 5곡 사인암을 성주군에 넣기도 하나 정확한 지점은 성주 댐 건설로 인한 도로 확장 공사로 파괴된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산 1-6번지이다. 성주군에 소재한 1~4곡을 중심으로 살피면 1~2곡은 성주호 하류에 있고 3~4곡은 성주호 상류에 있다. 성주 댐 건설로 9곡의 연속성이 끊어졌으나 하나라도 수장되지 않은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겠다.

제1곡 봉비암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회연서원의 뒤편에 있다. 봉비암은 구곡으로 설정되기 이전부터 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봉비암이라는 이름은 봉황새가 날아오를 듯한 모습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봉비(鳳飛)’라는 기녀가 실수로 떨어져 죽은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깎아지른 바위와 대가천 하류의 푸른 양정소[檜淵]가 색상의 대비를 이루면서 바위산과 맑은 시내가 어우러지고, 거울 같은 대가천 물에 봉비암이 비치어 절경을 선사한다.

제2곡 한강대는 회연서원에서 성주 댐 쪽으로 약 1㎞ 상류에 있는 성주군 수륜면 갓말 마을 뒷산 정상에 있다. 높은 바위와 탁 트인 조망, 그리고 산 아래 굽이쳐 흐르는 푸른빛의 대가천이 특징으로, 통쾌한 마음을 불러일으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만한 곳이다. 바위 위에 ‘한강대(寒岡臺)’라는 각자가 있고, 바위 측면에 「효기우음(曉起偶吟)」이라는 시 한 수가 새겨져 있다.

제3곡 무학정배바위로 더 많이 불리니 배를 매는 바위 또는 배를 닮은 바위라는 뜻이다.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김천시 증산면 방향으로 가다가 성주 댐과 예전 무학분교의 중간쯤 건너편에 배가 매여 있는 듯이 보이는 바위이다. 무학정은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정자의 이름으로 근자에 건립된 것이다. 2곡에서 12㎞ 넘게 떨어져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먼 편이다. 배 모양을 닮았다고 주암(舟巖)으로도 불렸다.

제4곡 입암은 우리말로 선바위인데 9곡 중 가장 경치가 뛰어난 곳으로 언급된다.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김천시 증산면 방향으로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를 지나가면 강 건너편에 30여m 높이의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바위 상단 중간에 있는 소나무에 학이 깃들어 살았다고 해서 소학봉(巢鶴峯)으로도 불렸다. 정구가 살던 당시에는 입암 아래 ‘환선암(喚仙巖)’[환산도라고도 함]이라는 넓적한 바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입암은 직각으로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이 날카로운 칼을 닮아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고 마치 세상을 굽어보며 고고하고 의연하게 서 있는 듯하다.

[포천구곡의 현장]

포천구곡가야산 주봉들의 북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쳐진 골짜기인 포천 계곡에 위치해 있다. 길이가 약 7㎞로서, 계곡 여기저기 너럭바위에 나 있는 짙은 푸른빛의 무늬가, 또는 반석 위를 흘러내리는 가는 물줄기가 마치 베[布]를 널어놓은 것 같아 ‘포천(布川)’으로 불렸다. 포천 계곡의 특징은 물이 맑고 풍부할 뿐 아니라 웅장하고 높은 가야산의 능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산지(京山志)』에는 맑고 푸른 물이 옥구슬이 구르는 것 같다고 하여 옥계(玉溪)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 설정된 포천구곡은 두 굽이가 훼손되었을 뿐 나머지는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다.

제1곡 법림교는 성주군 가천면 법전1리 아전촌교 앞에 위치하며 가야산 정상에서 발원한 물과 가야산 서쪽 두리봉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하는 곳이다. 작은 폭포들이 잇달아 있고 물이 아주 맑다. 제2곡 조연은 바위가 구유와 같이 패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현재는 도로 확장으로 깨진 바위들로 인해 모양이 훼손된 듯하다. 제3곡 구로동은 포천교 부근으로 계곡의 바닥이 하얀 반석이고 반석 끝에 옥빛의 맑은 소가 있다. 제4곡 포천은 바로 ‘포천’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곳이다. 완만하게 경사진 너럭바위 위를 흐르는 흰 물줄기가 베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위에 길게 나 있는 심청색(深靑色) 무늬가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제5곡 당폭은 너럭바위 폭포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최근에 일어난 홍수로 밀려 온 모래와 자갈이 폭포 아래 소를 메워버렸다.

제6곡 사연은 층층이 있는 작은 폭포 아래 바닥이 다 보이는 맑은 소가 있는 곳이다. 제7곡 석탑동은 계곡 가에 형성되어 있는 층층의 바위가 석탑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제8곡 반선대는 넓은 언덕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알맞은 곳인데, 이원조는 비옥한 땅에 농사를 짓고 사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연회를 베풀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9곡 홍개동은 바위 위를 흘러내린 물이 쌍폭을 이루고 그 아래 소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소 바로 위에 만산일폭루(萬山一瀑樓)가 있고 그 언덕 위에 만귀정이 있다. 홍개동의 사방으로 산이 둘러싸고 숲이 그늘을 이루고 있다. 계곡에 있는 용이 날아오르는 듯한 큰 바위에는 ‘용(龍)’자가, 냇바닥의 바위에는 ‘호어기(濠魚磯)’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건너편 바위에는 ‘분합폭(分合瀑)’이라는 각자(刻字)가 있는데 폭포가 나누어졌다가 합쳐진다는 뜻이다. 홍개동 바로 아래에 수조(水槽) 형태의 물길이 좁은 암벽 사이로 흐르고 있는데, 동쪽 암벽에 ‘구이폭제일계산(九二瀑第一溪山)’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무흘구곡과 포천구곡의 의의]

무흘구곡포천구곡은 한마디로 인문과 자연의 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가야산이 성주에 만들어놓은 수려한 자연 경관을 성주의 옛 현자들이 눈을 즐겁게 하는 경치로만 여기지 않고 정신적 승화의 계기를 제공하는 곳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경치를 지닌 곳은 우리나라 곳곳에 많으나, 동시에 자연과의 소통으로 정신세계를 충족하고 고양하고자 구곡을 설정하고 경영한 곳은 흔하지 않다. 더욱이 성주의 구곡은 다른 구곡보다 경치가 뛰어날 뿐 아니라 구곡시나 구곡도 등 구곡 문화의 경영에서도 더 높은 수준을 드러낸다. 무흘구곡포천구곡을 거닌 선인(先人)들은 맑은 물과 기암절벽을 보면서 자연을 감성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고, 대상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연에서 이치를 깨닫고 자연 앞에서 겸허함을 배우고자 했다. 이러한 자세는 오늘날 인류 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태도이다. 구곡 문화는 속도와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직선적 근대 문명을 여유와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곡선적 문화로 바꾸는 데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하므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문화 콘텐츠 개발 현황 및 방향]

구곡은 뛰어난 경치를 즐기면서 사색이나 성찰을 체험하게 하는 관광 자원이다. 그런 면에서 현대 관광의 경향에 알맞은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무흘구곡은 비교적 콘텐츠로 잘 개발되어 있으나, 포천구곡은 콘텐츠로의 개발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수준이다. 콘텐츠로의 개발 정도가 무흘구곡포천구곡보다 훨씬 큰 것은 전자가 역사적인 면이나 접근성, 지명도 등에서 후자보다 앞서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흘구곡도 성주만의 독특한 문화 관광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무흘구곡의 경우 1곡이 있는 회연서원 입구에 무흘구곡 전체에 대한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다. 구곡 문화에 대한 설명과 각 굽이에 대한 소개가 입간판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다. 특히 굽이에 대한 설명에는 구곡시와 구곡도가 포함되어 있어 구곡 문화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구곡의 현장은 바위 위 등 높은 곳에서 전망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시설에 힘입어 구곡의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경관의 아름다움이나 전망의 시원함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던 아쉬움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구곡시의 내용과 구곡의 실제 경치를 연계해 좀더 현장감 있게 해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직 한계로 남아있다. 앞으로 구곡의 현장에 계절에 따른 경치의 변화를 담은 사진을 게시함으로써 구곡의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등 좀 더 세심한 기획이 필요해 보인다. 예전부터 무흘구곡에 대한 감상법에는 계절별로 변화하는 경치를 즐기는 것이 빠지지 않았다. 덧붙여 2020년에는 한국화가 임순득에 의해 실경 산수화 「무흘구곡도」 9점이 창작되기도 하였다.

포천구곡에 대한 콘텐츠 개발은 1~9곡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수준이다. 안내판에는 사진이 실려 있고 그 옆에 간략한 설명과 구곡시가 게시되어 있다. 포천구곡 전체에 대한 콘텐츠는 구곡의 순서와 거리를 알려 주는 안내판 정도가 있다. 구곡시에 표현된 구곡의 경관적 특징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면, 여름철 물놀이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포천구곡무흘구곡과는 다른 경관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포천구곡에 대한 문화 콘텐츠는 무흘구곡과는 다른 방향으로 개발될 여지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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