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013
한자 玉花敎會
영어공식명칭 Okhwa Presbyterian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3길 9[옥화리 16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호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3년연표보기 - 옥화교회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05년 - 옥화교회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170에서 대가면 옥화동 162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2006년 - 옥화교회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162에서 대가면 옥화3길 9[옥화리 161]로 이전
최초 설립지 옥화교회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170 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옥화교회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162
현 소재지 옥화교회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3길 9[옥화리 161]지도보기
성격 교회
설립자 부해리
전화 054-932-6414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설립 목적]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일대 개신교인들의 예배와 전도 활동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변천]

옥화교회는 1903년 김순조·김현우·김현권 등이 대구 남성정교회 부해리 선교사의 전도로 예배를 보던 중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170번지에 세워진 교회이다. 영명학교와 함께 세워진 옥화교회는 1903년 5월 16일 부해리 선교사 주도하에 입당식 및 봉헌 예배를 진행하였다. 이후 1905년 김현우·유운화·김현권 등은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동 162번지에 634.7㎡ 규모의 땅을 매입해 교회를 새로 짓기로 하였다. 부해리 선교사의 사회로 기공식이 거행되었으며, 김현우 등 교인이 직접 19칸을 지어 같은 해 6월 20일 완공하고 입당 예배를 거행하였다. 건물 가운데 4칸은 학교로 쓰고 나머지 12칸을 예배당으로 하였다. 당시 학교 이름은 영명학교였으며, 교장은 김헌우, 교사는 김덕삼, 서화선, 유윤화 등이 맡아 학생들에게 한문과 지리, 성경 등을 가르쳤다. 이영식 목사는 영명학교 출신으로 대구맹아학교와 대구대학교를 설립한 인물이다.

1924년 11월 16일 권영해 목사 집례로 홍진수가 장로 장립식을 거행한 후 정식 당회가 조직되었다. 교회가 차츰 성장하자 1931년 홍진수, 김현권 등은 교회를 다시 짓기로 결의하고 목조 기와집 12칸을 완공하였다. 1932년 3월 17일 부해리 선교사의 사회로 입당식을 거행하였다. 일제 말 종교 탄압으로 침체되기도 하였으나 광복을 계기로 다시 성장하였다. 1946년 이후 김종태, 김은수, 원리정 목사 등이 교회를 맡아 시무하였다. 1961년 지역 청소년을 위해 고등 공민학교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1971년 8월 새로운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여 10월 14일 완공하고 입당 예배를 거행하였다. 1976년 성지식 장로를 중심으로 도남교회를 설립하여 분립하였다.

1996년 8월 전도사로 부임해 온 오송학 전도사가 10월 대구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담임 목사로 계속 시무하였다. 이후 박갑순, 백남훈 등이 부임하여 시무하였으며, 2009년 1월 한경희가 부임하여 현재까지 시무하고 있다. 현재의 예배당은 2000년 4월에 착공하여 2006년 6월에 완공한 것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내 활동으로 미자립 교회와 기관 지원 사회봉사를 펼치고 있으며, 해외 선교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현황]

2021년 현재 한경희 목사가 담임 목사로 시무하고 있으며, 부목사 1명이 있다. 장로 7명, 안수 집사 7명, 권사 35명 등이 있다. 교회 조직으로 공동 의회, 당회, 제직회 등이 있으며, 자치 조직으로 남선교회와 여전도회가 있다. 장년부와 노년부를 운영하고 있으나 교회 학교는 농촌 학생 수의 감소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주일 낮 예배와 오후 예배, 수요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옥화교회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서 지역 내에서 기독교 신앙의 명맥을 잘 유지해 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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