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788
한자 石鍊極
영어공식명칭 Seok Yeongeu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 2월 17일연표보기 - 석연극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일 - 석연극 성주읍 장날 독립 만세 운동, 성주읍 경산리 도로 앞 만세 시위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8일 - 석연극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8년 5월 10일연표보기 - 석연극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6년연표보기 - 석연극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석연극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석연극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활동지 석연극 활동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본관은 충주(忠州). 석연극(石鍊極)[1888~1948]은 1888년 2월 17일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7일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소학리이현기(李玄琪)가 주도한 만세 시위 운동과 가천면 동원리이상해(李相海)가 주도한 만세 시위 운동에 자극받은 성주 지역의 유림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합세하여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 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 장날 오후 1시에 성주읍 경산리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기독교도들이 먼저 태극기를 들고 성주읍 시장으로 나아가며 독립 만세를 고창했고, 이에 호응하여 시장 중앙에 모였던 유림 측의 송우선(宋祐善)·송회근(宋晦根) 등도 독립 만세를 부르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출신의 석연극도 만세 시위에 동참하였다. 석연극은 성주 읍내 시장에서 돌아오다가,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앞 도로에서 여지연(呂止淵)·박하빈(朴夏彬)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1919년 5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으나, 불복하며 상고하였다. 이어 같은 해 5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고,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8년 5월 1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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