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626
한자 施文用
영어공식명칭 Si Munyong
이칭/별칭 종록(宗祿),풍천(風泉)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구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2년연표보기 - 시문용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43년연표보기 - 시문용 사망
출생지 시문용 출생지 - 중국 저장성
거주|이주지 시문용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문명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시문용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성주
대표 관직 첨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귀화하여 성주에 정착한 명나라 출신의 무신.

[개설]

시문용(施文用)[1572~1643]은 정유재란 때 명나라의 구원병으로 와서 귀화한 인물로서 풍수가(風水家)이며 건축가(建築家)이기도 하였다.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종록(宗祿), 호는 풍천(風泉). 중국 저장성[浙江省]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시광윤(施光閏)이고, 아버지는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맹강(孟綱) 시윤제(施允濟)이다. 부인은 창녕 장씨(昌寧張氏)이고, 아들로 시영건(施永建)과 시영달(施永達)이 있다.

[활동 사항]

시문용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구원병으로 조선에 왔다. 26세의 나이로 제독(提督) 마귀(麻貴)의 도사중군(都司中軍)과 유격장군(遊擊將軍) 남방위(藍芳威)의 동정행영중군(東征行營中軍)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우리나라가 오래도록 태평한 기상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삶을 마감하려는 뜻을 품어 명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귀화한 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문명리의 대명동(大明洞)에 복거(卜居)[살 만한 곳을 가려서 정함]하였다. 선조(宣祖)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하고 성주를 본관으로 하사하였다. 인조(仁祖) 때는 한양으로 올라가 궁궐을 수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주군 수륜면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654년(효종 5) 세상을 떴다.

[학문과 저술]

『병학기정(兵學奇正)』과 『감여지남(堪輿指南)』, 『의복묘결(醫卜妙訣)』 등을 저술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형곡촌(兄谷村)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영조(英祖) 때 병조참판 겸 지의금부사 훈련원 도정(兵曹叅判兼知義禁府事訓鍊院都正)을 특별히 증직(贈職)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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