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205
한자 京山志
영어공식명칭 Gyeongsanji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재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77년연표보기 - 『경산지』 간행
간행 시기/일시 2000년 - 『국역 경산지』 간행
간행 시기/일시 2014년 - 『국역 경산지』 간행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성격 읍지
저자 이원정
권책 6권 2책[목판본]|1책[필사본]
행자 20행 20자
규격 31.7×20.4㎝
어미 상하내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內向四瓣花紋黑魚尾)
권수제 경산지(京山志)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정의]

1677년 이원정이 목판본으로 간행한 성주목과 칠곡도호부의 사찬 읍지.

[저자]

이원정(李元禎)[1622~1680]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사징(士徵), 호는 귀암(歸巖)이다.

[편찬/간행 경위]

『경산지(京山志)』이원정이 1668년경 편찬을 시작하여 1677년(숙종 3)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이원정이 쓴 서문에 편찬 경위가 소상히 드러나 있다. 장현광(張顯光)이 사림의 고장으로 알려진 이 고을에 증빙할 문헌이 없어서는 안 된다며, 지역의 유지들에게 읍지 편찬을 권유하였고, 이에 이원정의 부친이 편찬을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고, 아들 이원정이 정계에서 물러나 집에 있으면서 수정 보완하여 완성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신환국 직후인 1682년(숙종 8) 경상감사 이수언(李秀彦)은 『경산지』가 이이·조헌·윤두수·정철 등을 헐뜯고, 김상헌·송시열·송준길 등에 대해 함부로 말을 지어내었다며 『경산지』의 판목을 폐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목판본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으며, 필사본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성주문화원에서는 2000년[초간]과 2014년[재간]에 이상필이 번역한 『국역 경산지』를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6권 2책의 목판본과 초고본인 1책의 필사본이 있다. 계선(界線)이 있으며, 어미는 상하내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內向四瓣花紋黑魚尾)이다. 크기는 31.7×20.4㎝이며, 1면 2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는 ‘경산지(京山志)’로 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원정이 편찬한 1책의 『경산지』 초고본은 경계 도리(境界道里)부터 건치 연혁, 관원, 군명, 성씨, 풍속, 형승, 토산, 수택(藪澤), 각리, 성곽, 궁실(宮室), 누정, 학교, 사묘(祠廟), 역원, 창고, 불우, 고적, 명환, 인물, 총담(叢談), 부행(婦行), 정려, 효자, 제영(題詠), 전결(田結)의 순이다. 내용 중에는 칠곡(柒谷) 부분을 별도로 기재하였다. 1677년 이원정의 서문이 수록된 목판본 『경산지』의 내용 구성은 2책으로 되어 있는데, 필사본과 거의 동일한 순서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산지』에는 성주목만이 아니라 칠곡도호부 관련 내용도 수록하고 있다. 1640년(인조 18) 가산산성을 쌓고 칠곡이 독자적인 군현으로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성주 지역에 속한다는 강한 연고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물 항목에서는 본관이 아니라 실제 이 지역에서 살았던 인물을 중심으로 기록하고자 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산지』는 성주 관련 읍지로는 가장 오래된 책이며, 인물은 본관을 위주로 기록한 『동국여지승람』과는 달리 실제로 성주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위주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경산지』의 경우처럼, 붕당의 대립 구도 속에서 상대 붕당의 유력 인물이 주도한 사찬 읍지는 몇몇 문구가 빌미가 되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통해, 재지 사족들이 주도하는 고을 단위의 사찬 읍지 편찬은 매우 위축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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