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33
한자 明川里
영어공식명칭 Myeongch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명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규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명천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명천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명천리로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5.32㎢
가구수 132가구
인구[남/여] 228명[남 116명/여 112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명천(明川)’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는 없으나 자연 마을인 대내[죽천(竹川)]에서 나온 이름이 아닐까 추측된다. 명천1리의 자연 마을로 대내[죽천]와 새터[신기(新基)]가 있고, 명천2리의 자연 마을로 웃수름재[수음(水音)·덕산(德山)]와 아랫수름재[화음(禾音)], 회봉(回峯), 소도굴[소도리(所道里)·소도골·소도(蘇塗)]이 있다. 대내는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무성히 잘 자란다고 죽천(竹川)이라 부르며, 순우리말인 ‘대내’로도 부른다. 새터 또는 신기는 대내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덕산은 마을의 숲 이름인 봉소림의 ‘봉(鳳)’ 자가 봉황을 뜻하는데, 봉황이 덕(德)이 많은 동물로 알려져서 그 덕(德) 자를 따서 ‘덕산(德山)’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또 옛날 마을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골짜기 계곡 옆에 집을 지어 놓고 낮에는 열심히 밭을 갈고 밤에는 부지런히 책과 씨름하며 과거 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런데 낮에 힘들게 일을 하다 보니 밤이면 잠이 쏟아졌고, 그때마다 밖으로 나가 계곡물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들어와 공부를 하였다. 마침내 과거에 합격하여 금의환향 후 집 옆의 계곡물을 바라보며 물소리로 잠을 깨우던 옛일을 회상하며 ‘수음(水音)’이라 하였는데 이후 수음이 ‘수름’으로 바뀌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아랫수름재는 바로 윗마을인 웃수름재와 대비하여 붙인 이름이며, 이 마을 벼는 자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잘 자란다고 ‘화음(禾音)’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회봉은 학 한 마리가 날아와 마을 남쪽 산봉우리를 돌아서 날아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소도굴은 400년 전 이 마을에 들어온 김녕 김씨(金寧金氏)가 임진왜란 때 마을 뒤 조그마한 굴 속으로 피난을 하였다고 ‘소도굴’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 소도(蘇塗)는 삼한 시대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를 말하는데, 이곳은 난세에 은사(隱士)들이 안빈낙도(安貧樂道)할 수 있는, 외부의 사악(邪惡)한 기운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 소도, 소도골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대가방(大家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각 방을 면으로 바꾸는 제도 개편에 따라 대가방이 대가면으로 바뀌었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금수면에 편입되어 법정동인 명천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금수면 명천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명천1리에 오두산(烏頭山)이 있고, 명천2리에 회봉산(回峯山)이 자리 잡고 있다. 왜봉(倭峰)명천2리 소도골 마을 북쪽에 있는 산으로 벽진면과 면계(面界)를 이룬다. 이렇듯 명천리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대가천의 지류들이 얽히어 분지 내부로 흐르고, 이들이 만들어 놓은 평탄한 저지대에 농지와 마을들이 자리한다. 흥산천(興山川)은 금수면어은리와 명천1리, 대가면 흥산리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소하천이다. 화음천(禾音川)은 어은리 고루산에서 발원하여 명천리를 지나 흥산천에 합류하는 소하천이다.

[현황]

명천리금수면의 동남쪽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는 성주군 대가면, 서부는 금수면 광산리, 북부는 금수면 어은리, 성주군 벽진면 매수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32㎢이며, 명천1리와 명천2리 2개 행정리에 132가구, 228명[남 116명, 여 11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명천리의 인구는 1974년 762명에서 2010년 170명으로 감소한 후 2021년 228명으로 증가하였다. 가구 수는 1974년 126가구에서 2001년 70가구로 감소하였다가 2018년 116가구, 2021년 132가구로 역시 증가하였다.

문화 유적으로 명천2리에 할미산성(老姑山城)과 명천리 고분군(明川里古墳群)이 있다. 할미산성명천리대가면 도남리에 걸쳐 있다. 할미산성의 서쪽과 남쪽은 경사가 급하고 동쪽은 마을로 이어지는 계곡과 연결되어 있으며 북쪽은 길게 뻗어 명천리 고분군으로 연결된다. 명천리 고분군은 할미산성이 있는 야산[235m]의 정상부와 사면에 대규모로 밀집한 삼국 시대 고분군이다. 그 범위는 남쪽으로 대가면 자리섬 마을과 개정지 일대, 북으로 어은리 고름재 일대, 서쪽으로 금수면 소재지에 있는 금수 문화 예술촌[옛 금수초등학교], 동쪽으로 명천리의 덕산 소류지 일대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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