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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죽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2488
한자 翠竹集
영어음역 Chwijukjip
영어의미역 Collected Works of Chwijuk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박규서(朴奎瑞)[1795~1870]|박길래(朴吉來)|박환덕(朴煥德)
저자 박규서(朴奎瑞)[1795~1870]
편자 박길래(朴吉來)|박환덕(朴煥德)
간행자 박길래(朴吉來)|박환덕(朴煥德)
편찬연도/일시 1978년
간행연도/일시 1978년 12월연표보기
권수 2권
책수 1책
사용활자 필사본
가로 20㎝
세로 28㎝
표제 翠竹集
소장처 전주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처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1200[천잠로 303]

[정의]

197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박규서의 유고 시문집.

[개설]

박규서(朴奎瑞)[1795~1870]의 호는 취죽(翠竹)으로, 남원에서 주로 생활하였다. 누구의 문하에서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25년(순조 25)에 문과에 급제한 사실로 보면 문학적 재주가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박규서가 남긴 작품들은 1864년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 대부분 저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발간경위]

1978년에 현손 박환덕(朴煥德)이 박규서의 글들을 모아서 발간하였다.

[서지적 상황]

본서의 저본은 초간본으로, 전주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2권 1책으로, 필사본이다. 표제는 취죽집(翠竹集)이고, 지질은 닥종이다. 반곽 크기는 가로 20㎝, 세로 28㎝이다. 행수는 12행, 한 행의 자수는 26자이다.

[구성/내용]

책머리에 최창규의 서문이 있고, 그 뒤에 목록이 있다. 내용은 권1에 오언시와 칠언시가 175종의 시제하에 수록되어 있다. 같은 시제하에 2수 이상의 작품이 29수 있어서 모두 합치면 204수가 된다. 절구보다 율시가 많으며, 오언시보다 칠언시가 많다. 중간에 사부(辭賦)의 제목으로 읊은 것이 몇 개 있는데, 짤막한 고체시(古體詩)의 유형이다.

시절, 사물, 경관, 계절, 교우, 화운(和韻), 가정, 인물, 회고 등 다양한 대상을 시제로 삼아 평온하고 서정적인 기풍을 띠면서 운치 있는 시적 표현을 가미하여 교훈적인 내용을 읊었다. 두보(杜甫)의 시를 차운한 몇 편의 시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작가는 두보를 흠모하고 그의 시풍을 계승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2는 소(疏) 4편, 장(狀) 1편, 서(書) 5편, 명(銘) 1편, 책(策) 1편, 기(記) 2편, 서(序) 2편, 발(跋) 1편, 잡저 1편, 행장 2편, 제문 2편, 묘표 2편,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이 사항은 작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행장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후손이 준비해서 책을 출간할 때 첨부해야 할 사항인데 실수로 빠뜨린 듯하다. 다만 최창규의 서문과 박환덕의 발문, 저자 박규서가 쓴 조고(祖考)와 선고(先考)의 묘표(墓表)에서 가문의 내력(수지면 내호곡의 죽산박씨)을 찾을 수 있다.

시문들은 관직에서 물러나 지은 것이 많아 보인다. ‘선암동에 들어가 맑은 물에 세속의 찌든 마음을 씻고 거연히 술에 취하니, 산수가 모두 친구로다(與巡使遊丹陽三仙巖: 步入仙巖洞 淸流洗俗心 居然成一醉 山水摠知音)’와 ‘효제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니,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에 새겨야 한다(孝悌由天賦, 爾曹宜肺銘)’ 는 시편 등에 나타난 바와 같이 속세의 번민을 떨치고 산수 자연의 청정함을 동경하는 내용에서부터, 아들 손자들에게 경계하는 교훈적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의 세계를 살필 수 있다.

산문에서는 유형에 따른 편수는 적지만 사지평소(辭持平疏)를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에서 우국충절의 내용을 살필 수 있다. 문과에 등제할 때 지었던 「탕지반명(湯之盤銘)」의 글은 요순(堯舜)의 태평성대한 정치 이념을 송찬한 내용이다.

관직에서 물러나 조정에 올린 「삼정 대책(三政對策)」이 있는데, 국가가 우선시해야 할 세 가지 일로 먼저 농지 구획과 세금에 관한 것으로 전부(田賦), 엄정한 군사진영에 관한 문제로 군적(軍籍), 군사 진영의 수요에 충당하는 환곡(還穀)을 들었다. 민간의 소요는 이 세 가지가 제대로 거행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니 이들 삼정책(三政策)을 들어 한번 새롭게 하면 난리치는 백성들도 본래 순진한 자들이어서 스스로 새롭게 순종하는 도리를 가질 것이라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에는 젊어서 학문에 정진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을 두루 거친 뒤 퇴임하여 초야에 물러나 후진을 양성하고 아울러 시문(詩文)을 저작하며 여생을 마치는 것이 일반 학자들의 소망이었다. 『취죽집(翠竹集)』의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선 후기의 국가적·사회적 양상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나 가장(家狀)이나 행장이 없어서 누구의 문하에서 배웠는지, 성장 과정은 어떠했는지 등을 알 수 없는 것이 흠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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