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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2146
한자 南原竹山朴氏宗家
영어음역 Juksan Parkssi Jongga
영어의미역 Main House of Juksan Park Cla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79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6월 23일연표보기 - 남원죽산박씨종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남원죽산박씨종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건축물
건립시기/일시 1841년연표보기
정면칸수 4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796 지도보기
소유자 죽산박씨 종가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죽산박씨의 종택 가옥.

[개설]

남원죽산박씨종가는 2000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수지면 호곡리 홈실마을은 죽산박씨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전통 마을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변천]

조선시대 상류층 가옥의 특징을 간직한 남원죽산박씨종가박문수(朴門壽)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박문수는 고려 후기 충신으로 정몽주, 이색과 더불어 삼로(三老)로 불리었으며, 박문수의 호(號)는 송암(松菴), 시호(諡號)는 충현(忠顯)이다.

홈실마을이 죽산박씨들의 세거지가 된 것은 고려 후기 문하시중 박문수의 행적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 고려 공민왕박문수(朴門壽)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권세의 무상함을 개탄하고 72명의 고려 중신들과 함께 개성 두문동(杜門洞)으로 은둔하였다.

이때 박문수는 부인 김씨에게 “나는 고려에 누대를 끼쳐온 중신가문(重臣家門)의 자손으로 절의에 죽음은 당연하나 그대는 고향으로 내려가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자손을 끊이지 않도록 하오.” 하고 남원 초리방으로 내려보냈다.

처음에는 후손들이 남원 초리방에 살았는데, 조선 숙종 때에 박문수의 12세손인 박시채(朴時彩) 집안에 재화가 끊이지 않자 아들 4형제와 당질을 데리고 호곡(好谷)으로 이주하였고, 크게 번성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그 후 그의 후손들은 줄곧 이곳에서 살았으며 홈실마을은 죽산박씨 동족촌이 되었다.

[형태]

남원죽산박씨종가의 안채가 지어진 것은 1841년이며, 사랑채는 몽심재(夢心齋)의 건축 연대와 비슷한 18세기 말로 추정된다. 종가는 안채 1동, 행랑채 1동으로 되어 있다. 1841년 지어진 ‘ㄷ’자형 안채의 동북쪽에는 박문수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의 아름다운 민가정원인 남원죽산박씨종가는 역사와 공간 구성, 구조 등을 종합해 볼 때 전통 가옥의 건축물로서 많은 가치를 지닌 곳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3.03 업데이트 [의의와 평가]에 "한국의 아름다운 민가정원" 표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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