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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954
한자 洪有峰
영어음역 Hong Yubong
이칭/별칭 홍귀선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악인
출신지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성별
생년 1914년연표보기
몰년 2002년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농악인.

[활동사항]

홍유봉이 농악을 처음 접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놀 때나 ‘술맥이’ 때에 흥겨운 대로 두드리고 노는 소박한 마을굿을 통해서였다. 그러다가 8·15해방 이후, 스무 살 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에는 전국적으로 열린 농악 대회를 보면서 전문적인 농악인이 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러던 중에 서울 창경원에서 ‘전국농악대회’가 열렸고, 전주에서 참가하게 된 굿패에 소속되어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는 이 굿패에서 ‘끝버꾸’로 참가했다. 이 굿패는 류한준을 상쇠로 남원, 전주, 장수, 진안, 완주, 이리, 금산 지역의 농악 명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굿패였다.

이 농악대회에서 류한준 굿패가 1등을 하고, 이듬해 봄에도 농악 대회가 서울 제일운동장에서 열렸는데 또 1등을 했다. 이 대회를 마치고 홍유봉은 곧바로 포장걸립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전라북도에는 정읍 팀과 전주 팀 두 팀의 굿패가 있었다. 정읍 팀은 전부 고깔을 썼는데, 당시에 고깔을 쓰고 하는 굿은 인기가 없었다. 때문에 고깔을 쓰고 하는 정읍 팀 농악은 대회에 나가면 2등 아니면 3등을 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홍유봉은 6·25전쟁 전에는 이러한 농악 대회에 열 번 넘게 참가하였다. 6·25 직전에 전주시 다가동 공원 너른 터에서 ‘나방 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나방 대회’는 민속 예술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일어나 굿을 할 수 없게 되었다.

6·25전쟁 이후부터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류한준, 김상원 등 농악 명인들이 다 타계하였고, 그중 이채봉, 손판돌 등과 같은 몇몇 명인들만 살아남았다. 당시에는 진안의 한귀동이 쇠를 치고 소고는 홍유봉을 비롯한 채상 소고 명인들이 함께 굿패를 구성하여 굿을 하고 다녔다.

홍유봉의 말에 따르면, 굿패는 쇠치배만 교체하여 포장걸립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후 류한준패의 구성원들 다수가 사망함으로써 좌도 농악은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홍유봉은 정읍 전사섭이 구성한 굿패에서 활동하였는데, 이때에는 정읍 농악이 전국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홍유봉은 그 후로 여성 농악단을 조직하는 데 참여하였다. 여성 농악단의 농악 선생으로 활동한 사람으로는 정오동, 박오복, 손판돌 등이 있었고, 상쇠로는 정읍의 이명식, 부안 줄포의 박남식이 있었다. 홍유봉이 참여하여 전수한 단체들로는 남원 청거리, 전북여성농악단, 전주농고, 호남농악단, 아리랑농악단, 전북축산고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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