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정정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952
한자 丁貞烈
영어음역 Jeong Jeongryeol
이칭/별칭 정명섭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명창
출신지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 내촌리
성별
생년 1876년연표보기
몰년 1938년연표보기

[정의]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명창.

[활동사항]

정정렬의 소리 학습은 유년기부터 시작된다. 7살 때부터 14살 무렵까지 박유전의 소리를 전승한 서편제 명창 정창업에게 소리를 배웠다. 스승 정창업이 타계한 이후에는 당시 국창으로 추앙받던 이날치에게 소리 수업을 받았으나 1892년 이날치 명창 역시 세상을 떠났다.

연이어 스승이 타계하자 정정렬은 새로운 스승을 찾기보다 본격적인 독공을 통해 소리 수련에 몰입했다. 소리 수련 기간은 17살 무렵인 1892년부터 40살 전후인 1900년대 전반까지 20여 년이 넘는 세월이었으며, 전라북도 익산의 심곡사, 충남 홍산의 무량사, 공주의 갑사 등이 정정렬이 소리를 수련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정정렬의 소리제에 대한 대표적인 평가는 ‘좋지 않은 목으로 인한 부족한 성음을 다양한 음악적 변용을 통해서 신식 판소리로 확립했다’는 것이다. 즉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목을 타고난 결점을 장단과 조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보충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정정렬의 소리는 사설이 장단보다 길게 붙여져 있거나, 또는 앞당겨 붙이거나, 엇붙이는 방법 등 다양한 붙임새를 보인다. 그래서 고수들은 정정렬의 소리를 맞추기 어려웠다고 한다.

또한 소리의 조와 음질을 변화시켜서 소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밋밋한 발성보다는 음을 흔들어 극적 표현을 살린다거나, 밝고 씩씩한 표현보다는 구슬픈 느낌의 계면조 선율이 많았다.

정정열은 이처럼 소리꾼으로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에 걸친 수련과 음악적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제를 만들었고, 일제강점기 청중들의 정서와 부합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대다수의 판소리 공연자들이 그의 소리를 배우고자 하여 당시 활동했던 명창들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교육 활동을 하기도 했다.

[저술 및 작품]

1937년에 발매된 ‘빅터판 「춘향가전집」’은 정정렬의 탁월한 연출력을 잘 보여주는 음반이며, 지금도 최고의 창극 명반 중 하나로 꼽힌다. 정정렬의 독집 음반은 「춘향가」, 「적벽가」, 「심청가」 등 전통 판소리뿐만 아니라 「숙영낭자전」, 「옥루몽」과 같은 창작 판소리도 포함되어 있어 그의 창작 능력을 잘 보여준다.

또한 창극 전집은 폴리돌판 「심청전전집」과 「화용도전집」, 빅터판 「춘향전전집」, 오케판 「춘향전전집」 등으로, 이를 통해 정정렬의 치밀한 연출력의 일면을 볼 수 있고, 다양한 명창들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더늠으로는 「춘향가」 중 「신연맞이」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5.19 오자 수정 [활동사항] 소표제 중 신곡사를 심곡사로 수정함
이용자 의견
관** 안녕하세요? 디지털남원문화대전 관리자입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아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적하여 주신 부분을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05.19
정* 전라북도 익산의 신곡사가 아니라 익산시 심곡사 (深谷寺) 입니다. 담당자 분께서는 네이버 백과사전을 이용하시는 분들위하여 수정을 해주셨으면합니다. 2011.05.16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