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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919
한자 姜白川
영어음역 Kang Baekch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동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대금 연주자
출신지 전라남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성별
생년 1898년연표보기
몰년 1982년연표보기
본관 진주
대표경력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1971년 3월 16일]

[정의]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대금의 명인.

[개설]

강백천은 1898년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에서 출생하였다. 강백천은 17살 때부터 박준필, 전추산, 박종기 등에게 배운 뒤, 시나위 더늠 대금산조를 개척하였다. 따라서 강백천의 대금산조에는 「육자배기」나 「흥타령」과 같은 계면조 가락이 많다.

강백천의 대금산조는 박종기 계통의 판소리 더늠 대금산조와 더불어 우리나라 대금산조 가락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강백천의 대금 가락은 “특출한 남도 「흥타령」 가락을 마치 노래하듯이 산조로 옮겨 남도 가락의 진국을 표현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동사항]

17살 때부터 박준필에게 대금과 정악 풍류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전용선에게 단소, 가야금, 양금, 시조 등의 기본을 배웠다고 한다.

대금에 입문하여 정악 풍류 한바탕을 배운 다음 20살 무렵부터 남도 민요에 착안하여 대금으로 「육자배기」 등을 불다가, 진도 출신으로 19살 연상인 박종기를 만나 각자 산조를 만들기로 약속했다.

박종기는 소리 더늠, 즉 판소리 가락을 따라 엮은 대금산조를 만들게 되었고, 강백천은 시나위 더늠, 즉 남도 민요에서 터득한 시나위풍의 새 가락을 중심으로 대금산조를 엮었다고 한다. 이때가 1930년대였다.

1950년까지 남원에 살면서 활동하던 강백천은 1951년 전추산과 함께 전주국악원을 설립하고 기악부장을 맡아 운영하였다. 1954년에는 다시 남원에 내려가 살다가 1970년 부산으로 이사하였다. 부산으로 이주한 후에는 김동진, 김동표, 김동식, 이엽, 송부억쇠 등의 제자를 양성하였다.

강백천의 대금산조는 1993년 김동표가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정식으로 계승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1년 3월 16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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