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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532
한자 南原萬福寺址
영어음역 Manboksaji
영어의미역 Manboksaji Archeological sit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 494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이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1년 3월 30일연표보기 - 남원 만복사지 사적 제34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남원 만복사지 사적 재지정
성격 절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 전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 494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고려 문종 때 지어진 만복사의 터.

[개설]

『동국여지승람』 권지39, 남원도호부 「불우조(佛宇條)」를 보면, “기린산 아래에 있는데, 동쪽에 오층전이 있고 서쪽에 이층전이 있으며, 전 내에는 동불이 있는데, 길이가 35척(약 10.6m)이다. 고려 문종 때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숙종 때에 간행된 『용성지(龍城誌)』에는 “만복사 내에는 대웅전, 약사전, 장육전, 영산전, 보응전, 종각, 천불전, 나한전, 명부전 등의 불전이 있었으나 정유재란(1597)의 병화(兵禍)에 불타 잿더미가 된 뒤 사찰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변천]

만복사에는 5층과 2층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높이 약 10m의 불상이 있었으며,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과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큰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만복사는 불타버리고 말았다.

남원부사 정동설(鄭東卨)은 두 개의 방을 중창하여 승려들이 그곳에 머무르면서 사찰을 수호할 규칙을 만들게 하였다. 도선 국사남원부의 자리를 보고 사찰을 설립하여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울 것이며, 축천에 철우를 설치할 것이며, 골회봉(고리봉의 다른 이름)에 철환을 설치할 것이며, 용담과 호산에 탑을 세울 것이며, 선원과 파근에 사찰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치]

남원시에서 순창과 광주 방면으로 도로를 따라 약 2㎞쯤 가다 보면 왕정교가 있으며, 이 왕정교를 지나면 도로변에 석장승 한 구가 머리 부분만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석장승 바로 뒤에는 거대한 당간지주가 있다. 이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북쪽을 바라보면 현재 발굴, 정비된 만복사지가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7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남원 만복사지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1984년에 대략 사찰의 중요부만 발굴 조사를 완료하였다. 이 발굴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남원 만복사지는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堂式) 가람 배치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동안 남원 만복사지의 가람 배치는 ‘동탑서전식(東塔西殿式)’이라고 보았던 학설은 『동국여지승람』과 『용성지(龍城誌)』의 두 기록을 근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기록은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고려 문종 때의 만복사 가람배치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만복사 창건 당시의 건물들이 퇴락된 뒤의 현상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다 발굴 조사 결과 실제 고려 문종만복사는 일탑삼금당식 가람 배치였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발굴 조사시 많은 건물의 흔적을 찾았으며 청자와 백자, 많은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시대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오층석탑(보물 제30호), 불상좌대(보물 제31호), 당간지주(보물 제32호), 석불입상(보물 제43호) 등이 현재 절터 내에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고구려식의 절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로 연구 가치가 크다. 1991년 3월 30일 사적 제3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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