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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034
한자 韓應聖
영어음역 Han Eungseong
이칭/별칭 경기,귀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어은리
성별
생년 1577년연표보기
몰년 1592년연표보기
본관 청주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개설]

한응성은 장성한 뒤에는 처가인 순창 귀미(龜尾)로 옮겨 살았다. 호가 귀와(龜窩)인 것은 귀미에서 따온 것이다.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기(景期), 호는 귀와.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의 고손자이고, 대호군(大護軍) 한축(韓軸)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한응성은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 조헌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노비 등 수십 명을 거느리고 금산으로 출전하였다.

적의 세력이 강하자 조헌은 앞일을 예측하고 이르기를 “오늘 나는 이미 죽음을 결심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는 “인(仁)을 이루고 의(義)를 취함은 곧 나의 본 뜻입니다.”하고 분격하였다.

한응성은 곧바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 10명을 베고, 700명의 의사와 함께 순절하였다. 이때 한응성의 나이 36세였다. 노복인 부협(夫脅)이 시신을 거두어 순창 귀미로 돌아와 장사를 지냈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충신의 정려를 내렸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노동에 정려가 있다. 금산의 종용사(從容祠)에 제향되었으며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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