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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839
한자 朴繼成
영어음역 Park Gyeseong
이칭/별칭 이술,초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성별
생년 1563년연표보기
몰년 1597년연표보기
본관 죽산
대표관직 사직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이술(而述), 호는 초곡(草谷). 관찰사(觀察使) 행촌(杏村) 박자량(朴子良)의 후예로 참의(參議) 박숭조(朴崇祖)의 손자이다.

[활동사항]

박계성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고 예(禮)로써 몸을 다스려 당세에 이름을 떨쳤으며, 관직은 사직(司直)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7)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산을 털어 병기를 주조하고 군량을 모았다.

또한 동생 박승성(朴承成), 사촌 동생 박얼정(朴孼貞)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병이 생기자 박승성을 시켜 진주의 고득뢰(高得賚)의 의병소(義兵所)에 군량을 보냈다.

1597(선조 12)년 정유재란 때에는 적장 의홍(義弘) 등이 구례에서 남원으로 들어오자, 병든 몸으로 500여 명을 거느리고 둔산(屯山) 남쪽 지역을 지켰다. 적병의 포위로 남원부성이 위급해지자 남원부사 임현(任鉉)은 박계성에게 원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박계성은 율치(栗峙)로 달려가 적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그 뒤 숙성령(宿星嶺)을 넘어온 왜적을 맞아 수백 명을 물리쳤다. 화살이 다하고 칼이 부러지는 혈전 중에 적의 총탄을 맞아 순절하였다. 아우 박승성은 진주로 들어갔다가 성이 함락되자 여러 의사들과 함께 남강(南江)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고, 아들 박호(朴虎)는 백룡(白龍)의 적을 평정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는 그에게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증직하고, 나주 충장사(忠壯祠)에 배향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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