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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824
한자 金益熊
영어음역 Kim Ikung
이칭/별칭 양경,추곡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몰년 1592년연표보기
본관 경주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경(揚卿), 호는 추곡재(楸谷齋). 참찬(參贊) 김충익(金冲益)의 후손이며, 참판(參判)에 증직(贈職)된 김신추(金愼樞)의 아들이다.

[활동상황]

김익웅은 어버이를 효로 섬겼고 담력이 있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의 상중인데도 의병을 일으켜 나라와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을 따라서 같은 고을의 이영부(李永富)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은 적병을 베었다. 이어 웅치(熊峙) 싸움에 나아가 다른 장수들과 함께 하루 동안 다섯 번이나 싸우던 중 적의 화살에 맞아 순절하였다. 후에 그 지역을 관전동(貫箭洞)이라고 불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는 그를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봉하고, 선전관(宣傳官)의 증직을 내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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