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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801
한자 金伯仁
영어음역 Kim Baekin
이칭/별칭 사심,무정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경주
대표관직 수문장|선전관|주부|사헌부감찰|훈련원첨정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심(士心). 정숙공 김양경의 후손이며, 진사 김문세(金文世)의 아들이다. 두 아들 김덕원과 김덕흥은 모두 참봉을 지냈는데, 김덕흥은 뒤에 사헌부지평의 증직이 내려졌다.

[활동사항]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급제한 뒤 인조반정 때 수문장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진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으며, 그뒤 선전관을 거쳐 주부가 되었다.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호소사 김장생(金長生)의 종사관으로서 책임을 다하였다. 그뒤 인조가 강화도로 옮긴다는 말을 듣고 행재소로 달려가서 어가를 호종하였다. 뒤에 한양으로 돌아와서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다가 훈련원첨정으로 승진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조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하였으나, 강화가 맺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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