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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466
한자 造山洞
영어음역 Josan-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조산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정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동
면적 1.01㎢
총인구(남, 여) 2,057명(남자 1,010명, 여자 1,047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732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남원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농 지역으로 최근에는 아파트를 건설하는 등 개발이 진행 중이다. 남원의 특산품인 목공예품 생산단지인 목공예단지가 있다.

[명칭유래]

풍수지리설에 의해 마을에 산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명으로 산을 만든다는 조산(造山)을 사용하였다. 남원은 지세가 행주형(行舟形)이라 한다. 이것을 알게 된 도선(道詵)은 흘러가는 배를 막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비책을 하였다.

재물이 모이지 않고 인재가 나지 않으므로 지세의 허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이곳에 인공으로 토성을 쌓고 배를 매어두는 산을 만들었기 때문에 조산이라 하였다. 또한, 농우정(農友亭), 교남정(橋南亭)이라고도 했는데, 농우정이란 정자가 있었고, 승사교 남쪽 마을이란 뜻에서 불리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726년(영조 2)에 진주강씨(晉州姜氏)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으나, 금리의 박씨, 공씨, 고씨가 마을 앞에 흘러드는 요천강변에 물레방아를 설치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1800년대에 곡부공씨(曲阜孔氏)와 단양우씨(丹陽禹氏)들이 정착하여 형성되었다고도 한다. 본래 남원군 장흥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조산리와 금리(錦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조산리라 하여 남원읍에 편입되었다.

1981년 4월 13일 남원시로 승격함에 따라 리가 동으로 바뀌었는데, 이때 동부 조산동과 서부 조산동으로 나누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폐합함에 따라 남원시 금동 조산동이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에 있는 남원천이 남쪽으로 흐르면서 요천과 합류하고 있다. 평야 지대에 위치한 농촌 지역으로서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현황]

2007년 9월 기준 면적은 1.01㎢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732세대에 2,057명(남자 1,010명, 여자 1,04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총 면적은 101㏊이며, 밭이 7.6㏊, 논이 49.2㏊, 기타 주택 등으로 되어 있으며, 임야는 없다.

남원시의 외곽 지역으로 주민은 농업과 상업을 겸하고 있다. 주요 농업 활동은 벼농사와 시설원예를 하고 있다. 예로부터 조산동 일대에서는 남원에서 생산되는 한지로 부채를 생산하여 일본과 중국 만주 지역까지 수출되어 1925년 조산리 부채산업조합을 설립, 수출하는 업무를 대행했었다.

여기서 생산 된 부채는 태극선(태극무늬로 장식한 부채)과 방구부채(자루가 달린 둥근 부채)가 유명하며,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목공예단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옻칠 제품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있다.

주요 공공기관으로는 2005년에 이전한 여성회관, 남원시 보건소가 있고, 최근에는 아파트단지가 조성 중에 있다. 국도 17번 도로가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연결되어 남원시내를 지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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