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군보(君甫). 판서(判書) 배흥립(裵興立)의 후손이며, 포도대장(捕盜大將) 배시량(裵時亮)의 고손자이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켜 경상남도 함양에 본거지를 두고 남원으로 넘어오려고 하였다. 이 때에 남원의 진장(鎭將) 손명대(孫命大)는 정치(釘峙)를 지키다가 팔량치(八良峙)로 옮겨 적의 공격에...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기(新基)와 정치(正峙)에서 한 자씩 따서 신정리(新正里)라 하였다. 신정동은 남부·중부·북부로 나누어져 있다. 남부 신정동은 넓은 가방들 일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1300년경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새로 터를 잡았다 하여 ‘새터’ 또는 ‘신기(新基)’라 부른다. 중부 신정동은 교...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 장군이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격파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원성(南原城)에 들렀다가 잠시 마을 앞 축천(丑川) 강변에서 쉬어 간 일이 있었다. 훗날 이성계 장군이 조선왕조를 창건하여 왕위에 오르니, 사람들은 이 마을 이름을 왕묘(王廟)와 강정(江亭)에서 이름을 따 왕정(王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650년...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성계 장군이 1380년(우왕 6) 황산대첩 당시 이곳의 바람을 끌어 화공(火攻)으로 왜구를 물리쳤다고 하여 ‘바람시기(혹은 바람세기)’라 불렀던 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인풍리라 하였다. 한편 비단 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운봉의 북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남원향교(南原鄕校)가 위치한 데서 향교동(鄕校洞)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향교동 교촌은 1443년(세종 25) 남원향교가 덕음봉(관덕정 부근)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후에 향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향교가 있어 교촌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용정마...
향교동은 원래 남원 서봉면(捿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서봉면 구암(九岩), 교촌(校村), 장승(長承), 정치(正峙)와 통한면(通汗面) 용정(龍井), 왕지전면(王之田面)[왕치면] 응곡(鷹谷) 일부를 병합하여 이곳에 향교(鄕校)가 있기에 향교리라 하고 남원읍에 편입되었다가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리가 동으로 되었다. 용정(龍井)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