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태몽은 없지만 본시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신봉했던 지라 어머니가 나를 낳기 전에 매동 뒤의 서진암에서 부처님에게 자주 기도를 드리며 아들을 점지해 주기를 소망했으니, 내가 세상에 나온 뒤 어머니는 ‘너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낳은 아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내가 성장하여 스님들이 쓰시는 발우(鉢盂)의 제작을 평생의 업(業)으로 삼은 것도 어머님의 말씀과 무관하다고...
김을생 할아버지는 고희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금호공예’를 운영하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금호공예’ 사장이다. 그는 주로 자신이 경영하는 공방(工房)을 통해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실상사는 물론이고 전국의 명산대찰의 스님들과도 수시로 교류를 하고 있다. 마을의 대소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단다....
남원이 유서 깊은 도자기 고장이었다. 정유재란 때 남원의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생활해야 했고, 그 곳에서 일본의 도자기 수준을 향상시켰다.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고향 남원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불렀으며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노래가 오리 노래이다. 1994년 남원문화원에서 이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오리 노래탑을 세웠다. 남원은 전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