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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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옥여(玉汝), 호는 금서. 증조부는 방사량(房士良)이고, 할아버지는 방구성(房九成)이며, 아버지는 방계문이다.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효행으로 천거되어 현량과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정언·수찬 등을 지냈고,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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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공거(公擧).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주부(主簿) 방후령(房後齡)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봉해진 현감 방복령(房復齡)이 백부이다. 사촌 동생인 방명달(房明達)은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방명선은 1627년(인조 5)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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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흥중(興仲), 호는 구일(九一).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좌승지에 증직된 방덕린(房德驎)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자원하여 호위하였다.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備邊郞)에 제수되었다. 이후 선전청선전관(宣傳廳宣傳官)을 지내고, 훈련원습독(訓練院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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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후잠(后潛), 호는 만회(晩悔).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이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수찬(修撰) 방귀온(方貴溫)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참판에 증직된 방덕유(房德騟)의 아들이다. 방원량은 조찬한(趙讚韓)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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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겸(仲謙).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이고,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며, 방덕화(房德驊)의 아들이다. 방원익은 관직이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과 1624년(인조 2)의 이괄의 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형 방원진(房元辰)과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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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이정(而淨), 호는 지족와(知足窩).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7세손으로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수찬(修撰) 방귀온(房貴溫)의 증손이며, 사계(沙溪) 방응현(房應賢)의 손자이다. 방원정은 해서(海西) 오정길(吳廷吉)의 문인으로, 문장과 행의(行誼)로 이름을 떨쳤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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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다. 일찍부터 무예에 뛰어났던 방응언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사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扈從)하였다. 방응언은 난이 끝난 뒤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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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극지(克智), 호는 하천(下川). 직제학 방사량(房士良)의 후손이며, 방덕일(房德馹)의 아들이다. 방처인은 한강(寒崗)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천거로 참봉(參奉)과 수령(守令)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에 들어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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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에 있는 방사량을 위시한 다섯 명의 현인을 기리기 위한 서원. 유천서원은 오현사(五賢詞)라고도 불린다. 지방 유림들이 존경을 담아 제사를 지냈던 다섯 인물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본래 방사량(房士良), 방귀온, 안전(安瑑), 방응현, 안창국 등 다섯 명의 위패를 모셨으나, 안씨 문중에서 안전, 안창국 두 명의 위패를 현재의 주생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