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의 후손이다. 김축은 위풍이 당당하였으며 뜻이 고결하였다. 1624년(인조 2)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과 함께 전략을 세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여 기틀을 공고히 하였다. 조정에서는 김축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증직(贈職)을 내렸다....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익서(翼瑞). 부사(府使) 박호(朴瑚)의 고손자이며, 참봉(參奉) 박인손(朴仁遜)의 아들이다. 박필남은 힘이 좋고 일찍부터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적병들이 숙성령을 넘어오자, 의병을 거느리고 용추동(龍湫洞)으로 들어갔다. 박필남은 낮에는...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회가(晦可), 호는 간송(澗松). 도제조 무안군 정남만의 후손이며, 정산택(丁山澤)의 아들이다. 정사달은 효성이 지극하고 문행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정사진과 함께 조경남과 김완을 따라 궁장동으로 들어가서 많은 왜적을...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인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양. 자는 선술(善述), 호는 산서(山西). 우의정 양경공 조연(趙涓)의 후손이며, 사직 조벽(趙璧)의 아들이다. 조경남은 일찍 부모를 잃고 외조모에게서 자랐다. 효성이 지극해 6세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색동옷을 사양하고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다.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는 미음만 먹으며 3년을 지냈다. 15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