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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264
한자 三浪-
영어공식명칭 Samnang Ferr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시설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개항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삼랑나루 폐쇄
현 소재지 삼랑나루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지도보기
성격 유적지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있던 고려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좌도의 영남대로와 연결되는 수운의 요충지.

[개설]

삼랑나루(三浪나루)는 고려시대부터 수운의 요충지였으나, 1905년 경전선 개통과 함께 폐쇄되었고, 현재는 문화 역사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건립 경위]

삼랑나루는 고려시대부터 수운의 요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영남대로와 접속하는 낙동강의 가장 중요한 포구 중 한 곳이었다. 1765년 삼랑창이 설치되어 대동미(大同米)를 수납하고 운송하는 집산지로 번성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각지에서 수탈한 물자를 배를 이용하여 삼랑나루로 운반한 뒤, 삼랑진역 철도로 운송하였다.

[변천]

삼랑나루는 고려시대부터 상업 활동과 수운의 요지로서 크게 발달하였다. 1765년(영조 41)에는 삼랑창이 설치되어 밀양을 비롯한 현풍, 창녕, 영산, 김해, 양산 등 인근 마을의 전세(田稅)와 대동미를 수납하여 운송하였다. 삼랑나루는 당시 낙동강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물류가 모이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1905년 경전선이 개통되어 삼랑진 철교가 놓였고, 이와 함께 삼랑나루삼랑창은 폐쇄되었다.

[현황]

삼랑진은 작원나루, 낙동나루, 뒷기미나루, 석제진나루, 인선소나루 등 많은 나루가 있어 수운이 활발하였던 지역이다. 쇠점, 통점, 사기점, 칠기점, 가래점 등과 같은 지명은 삼랑진 지역이 수운에 기반한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삼랑리 인근에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남겨 놓은 적산가옥은 영화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1969년에 출간된 김정한의 소설 『뒷기미 나루』에는 당시 삼랑나루의 정취가 잘 표현되어 있다.

오늘날 삼랑진에 삼랑진양수발전소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2개의 인공 호수와 호수 둘레길은 봄에는 벚꽃길, 가을에는 단풍길, 겨울에는 철새 도래지로서 사계절 내내 방문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만어사-작원관지-급수탑-오우정-트윈터널-김범우묘에 이르는 테마 관광 삼랑진 코스가 마련되어 있어, 인근 문화 역사 관광지와 연계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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